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설명,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동시에 관련국과의 북핵 공조를 다지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특히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대북 압박 공조를 재확인하는 것이 이번 순방에서 거둬야 할 성과의 핵심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 대통령이 사드 갈등과 북핵 해결을 위해 외교력을 펼친다 해도 큰 진전은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외교가 그만큼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돼있는데다 구체적이지도 않다는 방증이다.
그러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하겠다며 미국이 재촉해 온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급작스럽게 결정하는 실책을 범했다.
한미 정부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의 안보논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안보논리가 너무 단순해 핵미사일 위협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수의 국민들이 납득하기가 어렵고 설득력이 약하다.
또 사드 문제가 등장하면서 한·미·일 대 북․ 중·러 라는 신 냉전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박근혜정부가 공 들여왔던 북핵 공조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좌충우돌, 갈짓자 행보를 해온 외교가 이제는 갈 곳을 잃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일관성도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능 외교를 보여줬다는 극한 평가도 나온다.
박근혜정부 외교가 꼬여버린 가장 주요한 요인은 남북관계다.
통일 대박론을 내세웠지만 남북 관계 개선에는 소극적이었고, '선 핵포기·후 지원' 방침에 따라 강공 일변도로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지는 못했다.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 기조는 결국 현실성과 구체성이 결여된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박 대통령은 북한 체제 붕괴까지 언급하며 김정은 정권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북 강경 기조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북한의 도발 위협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렛대’ 역할을 기대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다.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의 핫라인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다고 한다. 강력한 대북 제재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각국들의 복잡한 외교노선과 각기 다른 전략적 목표가 얽히고 설킨 속에서 제재 일변도의 정책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목표에 따라 우리 외교의 주도권을 점차 놓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의해 일본과 위안부 협상을 덜컥 타결한 것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가장 큰 문제는 동북아 지각 변동 속에서 자칫 고립 외교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재 이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은 연일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미국도 비핵화 논의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협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도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원하는 눈치다. 만에 하나 12월 미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 자칫 우리만 고립될 수 있다는 얘기다.
총체적 부실로 평가받는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은 이제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대화와 제재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병행돼야 한다.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이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남북 간 건설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임기는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의 외교 실패는 고스란히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주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