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은행들이 현금 뭉치를 안전한 대형 금고에 보관한다는 생각은 옛날 영화에나 어울릴 법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금리가 제로 밑으로 떨어지자 일부 은행과 보험사들은 이런 방법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금리가 더 떨어져 실제로 은행들이 이런 현금을 쌓아놓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판단할 경우 중앙은행들의 성장률 부양을 위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효과는 무색해질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적했다.
ECB 정책위원들은 경제 여건이 악화될 경우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민간 은행들과 보험사들은 중앙은행 예치 수수료를 피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그 중 하나는 ECB 예치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따로 금고에 비축하는 것이다. 독일 손해보험사인 뮌헨레 그룹은 이미 수천만 유로의 현금을 ‘관리가능한 비용’에 보관하고 있다. 코메르츠방크를 비롯한 여타 독일 은행 두 곳 역시 이와 현금 보관을 고려 중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경우 스위스 연기금이 현금 보관을 위해 막대한 현금 인출을 신청했을 때 스위스 중앙은행은 지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금융기관들의 현금 보관 현상이 확산될 경우 경제적 여파는 상당할 수 있다.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예치금리를 물지 않는다면 기준금리 인하의 영향도 받지 않게 되므로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는 대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들이 ECB에 돈을 맡기지 않고 직접 비축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경우 도둑, 지진 및 예상 밖 재난과 같은 위험요인이 따를 수 있다. 그렇다면 사고를 보장할 보험사를 찾아야 한다. 민간 은행 관계자들은 이 때 보험사에 치르는 비용은 총 보관액의 0.5~1%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은행으로서는 현재 ECB에 0.4%의 예치 수수료를 무는 것이 아직까지는 이득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0.75% 금리를 적용받는 은행들은 금고 비축을 한번쯤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 독일의 은행 관계자는 FT에 직접 현금 비축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낮으며 은행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서는 것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항의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현금 비축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은행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춰봐야 아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양측이 모두 피하길 원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