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대장경 팔만대장경

2016-07-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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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기록문화유산과 인천

아주경제 박흥서 기자 =대장경(大藏經)은 불교의 경장(經藏)·율장(律藏)·논장(論藏)의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것으로 석가모니의 말씀과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 교리에 관해 뒤에 제자들이 연구한 주석 논문을 모은 것이다.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동국이상국집).[1]


고려시대에 대장경은 모두 4차례에 걸쳐 조판되었다. 처음 조판된 것은 거란의 침입이 있었던 1011년(현종 2)으로 이를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이라 한다. 이후 1047년(문종 1)에 2차 조판을 통해 다시 보완했고, 1096년(숙종 1)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송·요·일본 등의 것과 국내의 것을 결집해 3차 조판을 했는데 이를 속장경(續藏經)이라 한다.

그러나 몽골군의 침략으로 대장경판(제1차~제3차 조판본)이 전소(全燒)되자 대장경의 재조(再彫)에 착수했고 이것이 팔만대장경으로 제4차 조판이다.
‘팔만대장경’은 대몽항쟁을 위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던 강도(江都)시대 고종 23년(1236)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무려 16년에 걸쳐 8만여 판의 경판 간행에 착수해 고종 38년(1251) 완성하였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1]


국운이 위태로웠을 당시, 16년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8만개가 넘는 대장경판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족의 침략을 물리치겠다는 정신력의 결집이었다.

강화 선원사는 1245년(고종 32) 최이의 원찰로 창건되어 팔만대장경 판각을 주도한 사찰로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장경판이 선원사를 떠나 한양의 지천사를 거쳐 해인사로 이운되었던 것으로 나타나지만, 어떤 경로로 해인사에 도착했는지는 자료의 부족으로 학자들의 논의만 분분하다.

선원사 터[1]


팔만대장경의 우수성과 문화사적 의의는 세계기록문화유산(2007)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설명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도시, 인천이 긍지를 갖고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치 등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해 나가는데 더욱 힘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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