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동국이상국집).[1]
고려시대에 대장경은 모두 4차례에 걸쳐 조판되었다. 처음 조판된 것은 거란의 침입이 있었던 1011년(현종 2)으로 이를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이라 한다. 이후 1047년(문종 1)에 2차 조판을 통해 다시 보완했고, 1096년(숙종 1)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송·요·일본 등의 것과 국내의 것을 결집해 3차 조판을 했는데 이를 속장경(續藏經)이라 한다.
그러나 몽골군의 침략으로 대장경판(제1차~제3차 조판본)이 전소(全燒)되자 대장경의 재조(再彫)에 착수했고 이것이 팔만대장경으로 제4차 조판이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1]
국운이 위태로웠을 당시, 16년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8만개가 넘는 대장경판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족의 침략을 물리치겠다는 정신력의 결집이었다.

선원사 터[1]
팔만대장경의 우수성과 문화사적 의의는 세계기록문화유산(2007)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설명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도시, 인천이 긍지를 갖고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치 등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해 나가는데 더욱 힘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