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하 전 원장[사진=한국식품연구원]
우리가 '농업혁명'으로 부르는 식량 생산기술 혁신은 인류에게 편안한 삶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달픈 일상의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농업이 본격화되면서 도시가 형성됐고, 인류는 산업 혁명과 디지털 혁명을 거쳐 최근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로 진화했다.
디지털 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인 빌 게이츠는 미래산업으로 농업을 지목하고, 아프리카 농업 발전을 위해 많은 돈을 지원하고 있다.
2050년 세계인구가 90억명을 상회하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현재보다 70% 이상의 식량증산이 이뤄져야 한다.
UN 식량농업기구(FAO)는 증산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 아프리카에 있다고 관측한다. 생계형 농업이 대부분인 아프리카는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단계가 아니다. 이에 따라 유럽 선진국은 농민의 역량강화(capacity building)를 위해 수많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창조경제를 활용, 농업에 ICT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하라고 권장한다.
그러나 '현장 농민의 역량이 첨단과학기술을 농업에 접목시킬 정도로 진화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역량있는 기업의 농업 진출을 막고 있다. 값싼 외국농산물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면서도 경쟁력있는 기업이 농업생산에 참여하면, 대기업이 농민을 죽이려 한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나라 농민의 모습이다.
농업은 이제 산업으로 분리해 경쟁력있는 기업을 위주로 자리매김하고, 농촌농민은 독일이나 스위스 농촌정책처럼 국가 자연자원의 유지와 보호의 수행주체로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선진국의 농식품 정책을 보면 기후변화와 사회 양극화를 포함한 지구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 생산, 가공·유통 및 수비·음식물 폐기물 관리를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농식품 시스템을 강조한다.
단계별 가치사슬에 관여하는 역할자를 특성에 맞게 지원하고 조정한다. 이를 통해 농업 경쟁력 강화와 농민 및 수비자 보호도 성취하는 시스템 위주의 정책을 취한다.
반면 우리는 생산단계만 강조되는 상황에서 농민은 각자도생만 생각하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동의 조직화에 관심이 없다. 정부도 생산단계에 첨단 기술의 접목만을 강조하지, 시스템 혁신에 무관심하다.
국내 농업은 더 이상 보릿고개 시절처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혁신만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외국제품과 당당히 경쟁하며 변화하는 지구환경에 맞게 경영돼야 하는 수출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농업의 국제 경쟁력은 기업 위주의 정책시스템을 강조해 국민 건강과 지구환경보호와 연계하는 것이 선진국 추세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혁신이지 시스템 혁신이 아니다. 역사속의 농업혁명은 기술혁신이었지만, 우리 농업은 이제 시스템을 혁신해 4차 산업혁명에 동참해야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