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KBO리그 현장에서는 불미스러운 벤치클리어링이 두 차례나 발생했다. 공교롭게 벤치클리어링과 관련된 선수들이 모두 각 팀의 주장들이었다. 하지만 주장도 주장 나름. 두 곳에서 발생한 벤치클리어링 ‘막전막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열린 인천 문학구장. LG 주장 류제국(33)과 SK 주장 김강민(34)이 맞붙었다. 선발 투수로 등판한 류제국과 3번 타자로 나선 김강민이 투·타 대결을 벌인 것이 아니었다. 주먹질이 오가는 격투기 한 판을 떴다.
사건의 발단은 류제국의 사구였다. 류제국은 7-4로 앞선 5회말 선두타자 김강민을 상대로 2B1S 이후 4구째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김강민은 바로 전 타석인 3회말 2점 홈런을 터뜨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강민이 맞은 부위가 예민했다. 김강민은 최근 옆구리 통증으로 약 한 달간 1군에서 제외된 뒤 복귀한 상태였다. 김강민은 다시 위험한 부위에 맞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이때 류제국이 사과의 제스처를 하지 않았다. 류제국도 이날 리드 상황이긴 했으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상태. 1루로 걸어나가던 김강민은 자신을 쳐다보는 류제국과 눈을 마주친 뒤 설전을 벌였다. 둘은 결국 주먹다짐까지 가는 격투를 벌이며 벤치클리어링을 발생시켰다.
이후 양 팀간 보복성 빈볼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 추가적인 불상사는 없었으나, 류제국과 김강민은 곧바로 동시 퇴장을 당했다.
대신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얻은 결과는 쓰기만 했다. 류제국은 승리투수 요건이 날아갔고, 김강민도 홈런으로 찾은 타격감을 잇지 못했다. “둘 다 잘한 것 없다”는 그들을 향한 비난 여론도 덤으로 얻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추가 징계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경기는 재개됐다. 하지만 문제는 7회였다. 앙금이 남은 NC는 세 번째 투수 최금강이 1사 후 정근우에게 초구 시속 145㎞의 강속구를 던졌다. 정근우의 등 쪽을 강타한 몸에 맞는 공에 정근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를 정도로 충격이 컸다. 충분히 보복성 빈볼 의혹을 받을만했다.
2차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양 쪽 벤치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두 번째 벤치클리어링 사태가 일어날 경우 감정이 더 격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근우의 대처는 놀라웠다. 정근우는 고통을 참으며 애써 마운드를 전혀 응시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배트를 놓고 1루를 향해 걸어 나갔다. 심지어 주심을 향해 손짓을 하며 ‘나는 괜찮다’는 제스처까지 취했다.
정근우가 보여준 캡틴의 클래스, 양 팀 선수단 전체에 귀감이 되는 주장의 품격이었다.
덕분에 더 이상의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오히려 3루까지 진루한 정근우를 향해 박석민이 다가가 멋쩍게 웃으며 사과를 했고, 글러브로 정근우의 엉덩이를 툭 치는 훈훈한 화해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한화는 정근우의 4타수 2안타(1홈런) 1사구 1타점 2득점 활약에 힘입어 NC의 16연승을 저지, 8-2로 이겼다. 송은범은 퇴장 없이 6⅓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춰 시즌 2승(6패)도 챙겼다.
하지만 이날 경기 결과보다 정근우가 보여준 주장으로서 대처 자세가 진정한 ‘승리’였다. 정근우는 경기 후 “공을 맞은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짧게 한 마디를 남겼다.
류제국과 김강민은 감정 조절을 못한 죄로 ‘의문의 패배’를 당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