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코리아] 김재원 서울해바라기센터 소장 "약자 보호, 배려 부족… 사회적 성숙도 높여야"

2016-06-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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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에 더 상처 안 주려면 지나친 관심 자제를

[김재원 서울해바라기센터 소장이 22일 서울대어린이병원 내 집무실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
 

아주경제 강승훈·조득균 기자 = 최근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을 타깃으로 한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전남 신안군의 한 섬마을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20대 여교사가 학부형 등 3명으로부터 집단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초등학교 관사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한 순간에 짐승으로 돌변한 이들은 사전 공모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나 충격을 더한다.

정부가 4대 사회악으로 정한 성폭력은 피해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등 주변까지도 육체적, 정신적 악양향을 미친다. 흑산도에서 성폭행을 당한 20대 여교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향후 사회에 원상적으로 복귀하는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성과 관련한 전반의 피해 때 의료, 수사, 상담, 심리치료 등 통합지원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울해바라기센터는 당장 성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과거 불법한 물리적 강제력에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기댈 언덕이 된다. 여성가족부, 서울시, 서울지방경찰청, 서울대학교병원 4자 협약으로 운영 중이다. 이곳 업무를 총괄하는 서울대어린이병원 김재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2014년 2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개소 직후에 줄곧 운영위원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

김재원 소장은 22일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2005년 소아정신과 전임의 시절 실질적인 성폭력 피해 대상자들을 접하며 이 분야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나 스스로도 전문가는 아니었으므로 각계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서 개인적 도움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김 소장은 그렇게 우연한 기회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 5년 사이 해당 업무의 지원 시스템이 상당한 발전을 거듭했다는 김재원 소장은 "서울대병원이 수탁을 시작한 2011년 2월 이후 5년간 총 4669명이 전화나 내방으로 상담을 가졌다"면서 "그들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 일부 아픔이 치유되는 걸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 20대 여교사 성폭행 논란이 거세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더해 사건이 일어난 근본 원인과 예방책을 고민해본다면.

"사회문화적인 성숙도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교육부에서 도서벽지에 여교사를 파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고립된 상황에서 다수의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에게 더 큰 외상을 줄 수 있다. 언론에 크게 노출되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지나치게 받게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상이 노출되면서 피해자와 가족이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 피해자에게 상담과 의료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법적인 재판 과정 등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돼서는 안 된다.

예방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먼저 우리의 사회문화적 인식이 절대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거절을 못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만약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해바라기센터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성폭행 피해자 지원 사례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 것이 있는지

"기억에 남는 사례는 아주 많다. 특히 친족 성폭행 피해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 2011년 한 여자 중학생이 친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러한 수모를 당했다는 점에서 당시 아이가 겪었을 정신적 충격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바라기센터에서 진행하는 심리 상담과 각종 진료를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고, 지금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어엿한 숙녀로 자랐다. 현재는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가해자인 친부는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친족 성폭행은 대다수가 계부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친부에 의한 피해 사례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친족 피해 사례의 경우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돼줘야 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를 보호해줘야 할 사람으로부터 오히려 피해를 당하는 것인데, 이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이렇게 피해를 입는 경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basic trust)를 잃게 됨으로써 앞으로 사회에 나가 쉽게 적응할 수 없게 된다."

■ 여성가족부가 전국 해바라기센터 36곳의 지원 실적을 분석한 결과, 성폭력 피해자는 감소한 반면 가정폭력 피해자가 증가했다.

"요즘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해체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형태가 다양화해지고 있다. 한 부모 가정, 동거, 입양, 이혼이 늘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대가족의 완충 작용이 붕괴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가정폭력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정 내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법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치닫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세태에 비춰봤을 때 향후 가정폭력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노인학대도 가정폭력에 속한다. 노인에 대한 생활비·의료비 등 각종 부양비가 늘어나면서 자녀들의 경제적 부담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끝내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국내외 경기 불황으로 젊은 층의 취업난이 지속됨에 따라 생활이 어렵고 팍팍해지는 점도 노인학대의 요인이 될 수 있다."

■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비롯,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보호시설 및 지원센터에 대한 기피 현상이 여전하다.

"보호시설과 지원센터의 기피 현상을 하나로 보지 말고 나누어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보호시설을 기피하는 경우는 친족 피해자가 아픔의 상처로 가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그 곁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반면 지원센터는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인식과 관련이 있다. 당사자가 피해를 당한 것에 대한 수치심과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고 기피한다.

센터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선진국에 비해서 개인 정보 문제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도움을 주는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반 대중이 환자나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줄여야 개인 정보가 보호된다. 이러한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피해자에게 더 큰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이다."

■ 피해자의 성별 현황을 보면 남성도 6% 가량 포함돼 있다. 이들의 치료 방식이 일반적인 여성 피해자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

"남성 6%는 아동, 청소년, 성인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이 가운데 아동, 청소년 비중이 월등히 높다. 남성에 속하지만 힘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에서 남자 동성애자가 연인 사이였던 상대 남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처럼 주로 동성애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여자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남자 피해자들의 수치심이 더 높게 나타난다.

현재 해바라기센터의 치료 서비스는 여성과 아동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센터 소장을 제외한 모든 인력이 여성이기 때문에 의사, 상담사 등 관련 업무를 담당할 남성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 남자 피해자 지원 체계를 독립적으로 갖추는 것이 사실상 필요한 것이다.

치료방식 등 지원은 여자 피해자와 똑같다. 남자 피해자들이 여자 상담사에게 피해 정황을 밝히고 지원받는 것을 꺼려하진 않지만, 수치심은 느낄 것이다. 이 때문에 남성 인력이 상대적으로 필요하다."

■ 서울해바라기센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또한 우리사회가 피해자와 피의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해바라기센터가 만들어진 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성폭력과 관련된 전문가는 여전히 부족하다. 증거 채취, 경찰 수사, 위기 개입, 의료 지원 등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예산으로는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인식도 전환돼야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피해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해 피해자에 대해 도움을 주는 지원자가 아니라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아울러 성폭행 가해자 중에는 청소년도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정상참작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처벌을 보다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사건은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처벌은 옳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성폭력 관련 문제 해결에 대한 갈 길이 아직 멀다.

또한 미국의 선진 사례를 보면 누군가 병원에 취직을 희망할 때 아동학대 및 성폭행 전력에 대한 조회를 통해 인력을 선발한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경우도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성폭력 예방 및 재범률을 낮춰야 할 것이다."

■ 김재원 소장은(?)

김재원 소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 및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며 '소아·청소년정신의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또한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 ‘어린이·청소년 우울증 전문 클리닉 MAY (Mood and Anxiety clinic of Youth)’를 개설해 우울증과 불안증, 자해·자살 위험, 기분조절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동청소년을 돌보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AACAP)에서 프로그램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해외에서도 소아청소년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우울과 자살 위기의 청소년 치료', '아이를 외국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 '생물소아정신의학' 등이 있다.
 

[김재원 서울해바라기센터 소장이 22일 서울대어린이병원 내 집무실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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