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대내외적으로 글로벌 침체로 성장 한계에 직면한 O2O 기업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주요 글로벌 O2O 기업들은 자금 부족으로 감원과 직원복지 축소 등 내리막길을 걷는 실정이다. 국내 O2O 시장 역시 지난해 상반기 이후 주춤하는 추세를 보이며 침체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탄조달이 어려워지면서 O2O 기업들간 동맹을 맺고 전략을 모색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내 O2O 대표 기업들을 직접 만나 그들만의 생존 노하우와 혁신DNA를 7회에 걸쳐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2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야놀자타워 카페. 얼핏 들으면 여성으로 착각할 수 있는 이름과 달리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운동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상남자였다.
"하루에 두 시간씩은 과격하게 배드민턴을 즐겨쳐요"라는 말로 본인을 소개한 그의 첫 인상은 활력이 넘치는 젊은 CEO였다. 그러면서 이내 쑥쓰러움을 잘 탄다며 수줍은 미소를 띄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루에 두 시간씩은 과격하게 배드민턴을 즐겨쳐요"라는 말로 본인을 소개한 그의 첫 인상은 활력이 넘치는 젊은 CEO였다. 그러면서 이내 쑥쓰러움을 잘 탄다며 수줍은 미소를 띄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대표는 2005년 28살의 나이에 자본금 5000만원을 토대로 지금의 '야놀자'를 창업했다. 매년 150% 이상 지속 성장해 만 10년 만에 야놀자를 수천억 원의 기업가치 평가를 받는 기업으로 일군 자수성가형 CEO로 꼽힌다.
성공의 비결에는 이 대표만의 끈기와 긍정적인 마인드에 있었다. 그는 "지방에서 서울에서 상경한 뒤 가진것도 없이 막막해 모텔 청소부, 종업원, 신문배달 등 닥치는데로 일했다"며 "다만,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 대표가 3년 동안 모은 돈으로 시작한 첫 창업인 샐러드 배달사업은 6개월만에 실패했으며, 모텔투어 상표권 분쟁 등 사업 과정에서 숱한 위기를 맞은 바 있다. 그럴때마다 뚝심있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그를 좌절이 아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이 대표는 "야놀자라는 숙박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도 모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4년 6개월 동안 모텔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배운 노하우로 밀어붙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놀자 사업을 펼치기 전에 회원 1만명이 넘는 모텔 종사자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으며, 모텔 정보 카페를 인수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야놀자는 이후 2000억원의 기업가치는 물론, 지난 10년간 양질의 숙박업소 양성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숙박을 기반으로 한 놀이 문화를 선도하고 싶었다"며 "야놀자는 현재 프랜차이즈 숙박 코텔(KOTEL), 호텔야자(YAJA), 몰카 안심존 캠페인, 마이룸, 마이키트 서비스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까지 유치한 약 250억원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모텔 산업에 대한 인식개선, 시설의 현대화, 서비스 매뉴얼 개발 등에 매진하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는 "고객 혜택을 높이고 서비스 시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같은 업계끼리도 선의의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야놀자를 주축으로 구성된 'O2O 얼라이언스 공개 포럼(D.TALKS about O2O)'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끝으로 이 대표는 야놀자의 강점으로 직원들과의 다양한 운동을 통한 교감을 꼽았다. 본인을 운동광으로 표현했듯이 야놀자 회사 한 층에는 헬스장과 탁구대, 요가 룸 등의 각종 운동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매일 자택인 잠실에서 회사가 위치한 선릉까지 1시간 가량 자전거를 타고 과격한 출근을 하는 동안 사업구상을 할 수 있어 1석2조의 효과를 거둔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직원들과 나누기 위해 마라톤과 배드민턴 동아리를 만들고 열심히 활동중이라는 것.
그는 "야놀자가 10년을 맞이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과격하게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이라면서 "이를 위해 직원들과 자유로운 환경에서 소통하며 즐겁게 일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과격"이라는 단어를 즐겨쓰지만 이를 과격하게 보는 직원들은 없었다. 다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직원들과 소통을 즐겨하는 유쾌한 대표로 기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