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내가 무능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무능한가." 20일 차이잉원(蔡英文·여) 총통에게 권좌를 내주고 물러난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은 최근 대만 빈과일보와 인터뷰에서 '무능 총통'이라는 항간의 비판에 대한 견해를 묻는 말에 강하게 불만을 피력했다.
마 전 총통은 자신의 강력한 부인에도 '무능 총통'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취임 초기 80%대로 치솟았던 지지율은 최근 9%까지 떨어져 '9% 총통'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국민당 소속인 마 전 총통은 2008년 대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인 765만표를 획득하면서 민진당 소속 천 전 총통을 꺾고 8년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마 전 총통은 당선 직후 한 주류회사가 '마 당선인이 이겼다'는 뜻의 '마잉주(馬贏酒)'라는 포도주를 총통 취임식에 선사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가는 곳마다 환호를 받으며 한 때 '마잉주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취임 직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를 창구로 하는 양안회담을 가동시켜 전 정권 때 소원해졌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빠르게 개선시켰다. 양안회담은 가동 1년만에 양안 직항로 개설, 금융 및 경제협력 강화 등 여러가지 합의사항을 도출했다. 2009년 대만이 유엔에서 축출된 이후 38년만에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주최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WHA)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게 된 점이 대표적 친중 정책의 성과로 꼽힌다.
마 전 총통은 2010년 6월 중국과 관세 감면과 서비스업 시장 개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고 그 해 2010년 10.72%의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는 친중 정책의 성과에 힘입어 2012년 대선에서 차이 주석을 상대로 승리해 재선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친중 정책의 성과가 반짝 현상에 그치면서 마 전 총통의 인기도 시들해져 갔다.
마 전 총통이 '6%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실업률 3% 이하'라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2011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2∼4%대로 추락했다. 작년에는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2009년 이후 최저치인 0.85%를 기록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의 후광을 입을 수단으로 인식되던 ECFA에 대해서도 중국 종속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났다. 지나친 친중 정책으로 대만의 주권이 위태로워졌다고 여긴 대학생들은 2014년 3월 ECFA 후속 협상으로 진행되던 서비스무역협정의 철회를 요구하며 초유의 입법원(국회) 점거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리는 23일간의 입법원 점거 시위는 같은 해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직할시 6곳 중 5곳에서 참패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됐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국민당 주석직에서 사퇴한 마 총통은 대선을 두달 앞둔 작년 11월 양안 분단 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양안 정상 회담을 이끌어 냈지만, 깜짝쇼라는 평가 속에 선거 판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마 전 총통은 1월 대선과 총선에서 민진당에 정권을 내준 점과 국민당이 의석 수 64석에서 35석으로 쪼그라들며 존폐 위기에 처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마 전 총통 개인적으로도 검찰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퇴임 후가 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 전 총통이 재임 기간 시민 등으로부터 고발당했지만, 형사 면책 특권 때문에 조사 중지된 건은 황스밍(黃世銘) 전 검찰총장 관련 건 등 24건에 달한다. 황 전 총장은 2013년 마 전 총통에게 수사 중인 사건 내용을 사전 보고했다가 수사 기밀 누설 혐의로 기소돼 작년 2월 징역 14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마 전 총통은 전날 총통 취임식 참석을 위해 대만을 방문한 미국 특사단 면담 등을 끝으로 업무를 마무리했다. 그는 작년 수리를 마친 타이베이(臺北)의 자택과 타이베이 네이후(內湖)구에 마련한 사무실에 머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