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사 빅스토리픽쳐스 임건중 대표의 말이다. 빅스토리픽쳐스는 중국 드라마 제작사 1위인 화책그룹이 영화 투자·제작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 화책연합의 한국 지사 격이다. 지난해 화책연합과 출범을 같이해 중국에서 영화화하기에 좋은 국내 웹소설, 웹툰을 선정하고 그에 적합한 한국 인력을 꾸린다.
중국 영화 시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설명하자면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이 북미를 제외한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 중 33%는 중국에서 번 것이고 '쥬라기 월드' 해외 수입 중 31%가 중국발이다. 각각 50개국, 67개국에서 개봉한 것을 감안하면 수치는 더 놀랍게 다가온다.
이 거대한 중국 영화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으로 한류 스타를 내세운 국내 영화 수출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상황은 생각처럼 여의치 않다. 중국판 스크린 쿼터제 때문이다. 중국에서 1년에 상영할 수 있는 외화는 분장제 영화(영화배급을 위탁해 흥행수입을 제작, 배급, 상영 주체가 나누어 갖는 방식) 34편, 매단제 영화(흥행 수익을 비롯한 일체의 배급권을 파는 방식) 30편뿐이다.
그래서 나온 비책이 한·중 합작 영화다. 2014년 체결된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영화 공동 제작에 관한 협정' 덕에 중국과의 합작 영화가 공동제작영화로 승인받는 경우 중국 내에서 자국영화로 인정된다.
한·중 합작 영화는 타율도 높다. 610만 명의 관객을 모아 한·중 합작 영화 중 최대 흥행작으로 꼽혔던 ‘이별계약’(2013)은 55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불과 17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2014)에게 일 년 만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세여 다시 한 번’은 국내에서 850만 관객을 모은 흥행작 ‘수상한 그녀’의 중국 버전이다.
중국 드라마 제작사 1위인 화책그룹이 한·중 합작 영화 사업에 발을 담근 이유다. 임 대표는 한국 콘텐츠를 향한 중국의 관심에 대해 “중국은 이미 한국 콘텐츠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또 한국 콘텐츠 특유의 색깔도 매력적으로 느낀다. 비슷한 정서도 주효하다”고 분석했다.
웹툰 ‘사이드킥’은 악당 빌런과 맞서 싸우는 슈퍼히어로의 조수 ‘사이드킥’의 이야기다. “중국은 여전히 서유기에 열광할 정도로 히어로물에 대한 사랑이 각별합니다. 또, 히어로에게 모든 조명이 쏠린 여타의 영화와 다르게 히어로의 조수에게 집중한다는 것도 새로운 매력이죠. 국내와는 달리 히어로물을 제작할 만한 막강한 자본력도 갖췄고요. 그들이 사랑한 콘텐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주가 주효했가고 봅니다.”
화책연합은 지난달 한국과 중국의 영화 시장을 선도할 콘텐츠 발굴을 위해 총상금 1억 원을 걸고 국내에서 공모전을 진행했다.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총 1093편의 콘텐츠가 쏠렸다. 애초 예정이었던 6월 당선작 발표를 한 달 여간 미뤄야 할 정도다.
임 대표는 “도전자들이 나름대로 중국 시장을 공부해 전략적으로 준비한 작품 많았다. 한·중 합작을 노골적으로 공략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면서도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신선함과 완성도다. 어차피 현지화 작업은 필수적으로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가 기획해 시나리오 단계에서 중국 리메이크 판권이 팔려 한·중 합작 형태로 중국에서 리메이크될 ‘계춘할망’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어릴 적 잃어버렸다가 12년 만에 돌아온 손녀 혜지(김고은)와 그를 끔찍이 아끼는 할머니, 해녀 계춘(윤여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국내 영화는 두 달 동안 제주도에서 올 로케이션했지만 중국에서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중국에는 해녀 문화가 없어요. 시골에 대한 이미지도 한국과 판이하죠. 왜 국내에서는 시골하면 따뜻하고 정감 어린 느낌이 들지만, 중국에서는 단지 낙후된 곳으로 치부됩니다. 영화를 정서를 유지하면서 중국에 맞는 현지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한·중 합작 영화가 양국을 공략할 수 있을까? 임건중 대표는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했다.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한·중 합작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는 손예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도 국내에서 2만 명의 관객을 채 모으지 못했고, ‘엽기적인 그녀2’ 역시 개봉 당일인 12일 1만 5192명의 관객으로 초라한 출발, ‘엽기적인 그녀’의 명성에 금만 간 꼴이 됐다.
“한·중 합작 영화로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둬야겠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중 합작 영화는 한국의 배우나 인력이 중국 영화에 매칭된 형태이죠. 비슷한 정서라고 해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를 아우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중국시장만을 공략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