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누군가에게 MBC '결혼계약'은 그저 '땜빵'이었을지 모른다. '막장 끝판왕'이라 불리며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했던 '내 딸 금사월'과 '사극 거장' 이병훈 PD의 신작 '옥중화' 사이에 낀 16부작 멜로였으니까. 하지만 시작이 어땠다 한들 이 드라마가 맺은 끝은 창대했다.
최근 브라운관에서 찾기 어려웠던 정통 멜로를 '결혼계약'은 배우들의 호연과 매끄러운 연출력을 바탕으로 힘차게 풀어갔다. '달콤한 인생', '개와 늑대의 시간', '로드 넘버원' 등 비교적 선 굵은 작품을 맡았던 김진민 PD는 이런 뚝심이 정통 멜로에도 통한다는 걸 입증했다.
하지만 처음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이서진은 출연을 망설였다.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였다. 대본이 나빴던 건 아닌데 너무 전형적이어서 안 하려고 했다"는 게 배우의 설명.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린 건 제작진의 정성이었다.
"캐릭터에 조금 불만이 있다고 했더니 제작사에서 PD와 작가를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김진민 PD는 안면이 있었는데 정유경 작가는 몰랐어요. 정유경 작가는 워낙 대본 집필을 오래 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작가를 만나서 캐릭터를 고쳐 달라고 하는 게 좀 아니다 싶었어요. 그런데 제작사에서 '그래도 괜찮다'고 하기에 한 번 만나기라도 해 보자는 심경으로 나갔죠. 그 자리에서 '캐릭터가 너무 착하다'고 했더니 3일 만에 대본을 수정해서 보냈어요. 거기에 무척 감동받았죠. 그 대본을 받고 나서 바로 출연을 결심하곤 '앞으로 절대 캐릭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결혼계약'은 17.2%(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로 시작해 22.4%로 마무리 지었다. 4회까지 방송된 후속 '옥중화'의 최고 시청률이 20.0%인 점을 감안하면 '결혼계약'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계약'이 이서진에게 주는 의미는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을 "어쩌면 생애 마지막 멜로"라고 내다봤다.
"이제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또 멜로를 하겠어요. 해도 닭살 돋는 로맨틱한 건 못 하겠죠. '결혼계약'이 제 마지막 멜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계약'을 마무리한 이서진은 당분간 KBS2 새 예능 '어서옵쇼'에 집중한다. 다작하는 배우가 아닌 만큼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운 게 없다. 아마 당장 들어가는 영화나 드라마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우의 생각과 달리 '결혼계약'은 이서진 표 멜로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계약 결혼을 한 혜수 앞에서 이혼 서류를 찢으며 "소송 걸어. 난 이혼 못 해"라고 말하던 지훈은 "아프냐. 나도 아프다"던 '다모'의 황보윤 종사관만큼 로맨틱하고 애절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