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가격은 2분의 1, 가치는 2배.”
박성수 이랜드그룹 창업자는 경영원칙을 말할 때 늘 어머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박 창업자는 1980년 서울 이화여대 앞 패션거리에 이랜드의 전신인 ‘잉글랜드’라는 보세 옷가게를 열고 기업가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당시 중저가 캐주얼 의류의 시장 수요를 간파한 박 창업자가 만든 제품들은 어머니의 철학을 계승 반영한 ‘좋은 품질에 가격은 절반’이었다. 단기간에 입소문을 타고 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얼마 후, 단골고객들 가운데 매장 분점을 내고 싶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박 창업자는 “점주들에게 가맹비와 로열티를 받고, 생산은 아웃소싱을 하며, 회사는 브랜드를 기획하고 디자인에만 전념하면 더 좋은 옷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국내 최초로 패션 프랜차이즈 개념을 도입했다. 패션 프랜차이즈는 이랜드를 만들어낸 자신과 판매자, 생산자와 고객 등 회사를 구성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이랜드’, ‘브렌따노’, ‘언더우드’ 등의 브랜드를 잇달아 히트시켰다.
1994년 개점한 ‘2001 아웃렛’은 국내에 처음 도입한 아울렛 스토어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 박 창업자의 의지가 담긴 사업이다. 당시 국내에는 백화점 이외 중산층이 이용할 만한 유통채널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에 2년여 간 전담팀을 꾸려 신개념 유통사업을 구체화했다. '2001 아울렛'은 브랜드 의류의 가격파괴 열풍을 주도하며 도심형 아울렛 모델을 제시해 이랜드의 성장뿐 아니라 아울렛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 창업자가 정성을 쏟는 것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바로 직원들이다. 대외활동은 지나칠 정도로 자제하는 대신 ‘카니발’ 미니밴을 타고 전국 곳곳의 매장을 수시로 돌며 현장 직원들과 만난다. 사업부별 강연과 각종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직원들의 경조사 등 사소한 것들을 대화하는 스킨십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타인을 위한 가치를 중요시 하는 만큼, 박 창업자는 직원들에게도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한다.
“봉급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샐러리맨이고,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비즈니스맨이다. 그보다는 하늘의 소명 때문에 일하는 ‘콜링맨(calling man)’이나 자신이 받는 봉급 이상으로 많은 가치를 세상에 돌려주는 ‘밸류맨(value man)’이 돼야 한다.”
‘남녀차별, 출신학교, 지역연고, 연공서열’ 등 4개 차별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박 창업자는 능력과 성과 위주로 판단해 ‘파격인사’도 많이 한다. 과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거나 대리를 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신사업에는 성별이나 연공서열보다 능력과 성과를 중요시해 여성임원을 배치했다.
“지식이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과거의 노하우는 소용이 없고,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그는 1999년 처음으로 지식경영을 도입, 이를 기업의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