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베이징에 놀러온 한 여성이 현지의 친구와 저녁을 먹고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에 도착했다. 현지에서는 꽤 유명한 4성급 로컬 호텔이었다. 룸키를 인식시켜야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방이 있는 4층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호텔방문을 열려는 순간, 검은 가죽재킷차림의 괴한이 여성을 잡아당겼다. 여성은 소리를 지르며 벗어나려 했지만, 힘으로 당해낼 수 없었다. 복도에 두명이 지나가길래 도와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중 한명은 한번 훑어보더니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고, 또 한명은 호텔 직원이었다. 호텔직원은 느릿느릿 다가왔지만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괴한 역시 호텔직원의 접근은 안중에 없었다. 괴한은 여성의 목을 쥐고 여성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래도 호텔직원은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세명의 투숙객이 내렸다. 여성이 도와달라고 애원했지만 한 명은 여성을 본채 만채 지나쳐 갔고, 나머지 두 명 역시 본인들의 방으로 가버렸다. 괴한의 전화기에 벨소리가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는 사이 여성은 괴한의 손에서 빠져나가 도망을 시도했지만, 2초도 지나지 않아 괴한의 손에 다시금 붙잡혔다. 울부짖는 여성과 윽박지르는 남성에 호텔복도는 시끄럽기 그지 없었을 터. 듣다 못한 한 투숙객이 복도로 나왔다. 괴한은 여성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계단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제서야 호텔직원과 투숙객이 저지에 나섰고, 괴한은 그 길로 도망쳤다. 4월3일 저녁 10시51분에서 54분까지 4분여동안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허이(和頤)호텔 4층에서 벌어진 일이다.
놀란 여성은 이튿날 자신이 당한 일을 웨이보(微薄)에 올렸고, 이 사건은 삽시간에 중국대륙을 달궈놓았다. 그리고 당시의 장면을 담은 CCTV 영상이 중국내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전 중국이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그들 스스로의 자화상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괴한으로부터 폭행과 구타를 당하고 있는 여성이 그렇게 애원을 했건만, 4분동안 6명이 못본채 지나쳤다. 호텔직원마저도 여성을 돕지 않았다. 호텔직원은 사건 이후 연인끼리의 애정싸움으로 오인했다고 변명했다. CCTV화면에 등장하는 방관자들이나 호텔방에 있던 투숙객들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호텔측은 공개사과했고, 현지 공안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에 나섰으며, 베이징 여유국은 호텔의 등급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텔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동시에 중국인 스스로 “왜 우리는 위험에 빠진 타인을 방관하는가”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산당 기율위원회의 기관지는 “주변에 공산당원이 있었다면, 분명 여인을 도왔을 것”이라는 평론을 내놓아 네티즌들의 코웃음을 사기도 했다.
◆방관자심리는 인간의 본성
이 사건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방관자효과(방관자심리)’의 한 사례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용어는 1964년 미국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집 근처에서 강도살해된 사건에서 비롯된 범죄심리학 용어다. 새벽에 30분간 사투를 벌였고 40여가구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었다. 이 사건이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왕립학회 수석연구원을 지낸 저명한 심리학자인 마이클 본드는 그가 저술한 ‘타인의 영향력’에서 방관자효과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대다수 사람들은 비상상황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만 피해자가 아는 사람이거나 같은 집단의 일원이라면 개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마이클 본드는 낯선 사람의 일에 무관심, 외면, 책임회피 따위의 행동을 보이는 게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월 부인과 아들을 3년동안 상습적으로 폭행했던 한 가장이 아들로부터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3년동안 아파트 이웃주민들은 끔찍한 가정폭력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직접 제지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방관자효과에 ‘플러스 알파’
중국에서의 방관자효과는 보편적인 인간의 행동양식을 넘어선다. 중국에서는 방관자효과에 더해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면 도리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방관자효과에 더한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 중국인들은 방관자효과로 빚어진 사건을 접할때면 펑위(彭宇)사건을 떠올린다. 이 사건은 중국인들의 뇌리속에 깊이 각인되어,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때면 다시금 회자되길 반복하고 있다.
사건은 10년전인 2006년 11월 20일에 일어났다.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한 할머니가 번잡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다가 넘어져 쓰러졌다. 막 버스에서 내린 펑위(彭宇)는 노파를 부축했으며, 이어 주변의 한 남성이 함께 일으켜 세워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노파는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병원 검사 결과 13만위안이라는 거액의 치료비가 나오자 노파의 태도는 돌변했다. 노파는 펑위가 자신을 밀어넘어뜨렸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에도 불구, 법원은 1심에서 '공평의 원칙'을 내세워 펑위에게 4만 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펑위는 불복해 항소했고, 양측은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합의해 법정싸움을 종결지었다.
이 사건은 당시 중국을 뒤흔들었다. 제대로 판결을 하지 못한 사법부에 대한 비난이 일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의 도덕성이 50년은 후퇴했다는 한탄이 일었다. 하지만 선의로 인한 봉변을 피하기 위해 중국인들은 방관자가 되어갔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어도 펑위사건을 떠올리며 외면했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모르는 사람을 돕지 마라”고 교육시켰다.
◆법규제정에도 별무신통
이후 이 같은 외면현상은 중국내에 광범위하게 퍼졌고, 관련된 안타까운 사연들도 줄을 잇기 시작했다. 도움을 받지 못한 노인들의 사연은 부지기수였다. 급기야 2011년 중국 위생부는 '노인 부축 가이드라인(跌倒老人干預指南)'라는 해괴한 문건을 발표했다. 쓰러진 노인을 발견했을 때 외면하지 말고 구호조치에 나설 것을 주문한 이 문건은 외면하면 상황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2013년 8월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발효시켰다. 법은 구호자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구호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 책임을 면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 문건이나 법규들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중국은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혀져 알게된 사람 혹은 오랜시간 친교를 맺은 사람들은 무한정 신뢰하고, 무슨 일이든 도와주려 한다. 때문에 유력한 친구가 요직에 있다면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이른바 ‘꽌시(關係)의 나라’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중국에서 일하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꽌시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꽌시를 찾아서 민원을 넣는다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꽌시가 없는 상태라면, 중국인은 차갑디 차가운 ‘방관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에 대해 중국인 스스로 각성해야 한다는 목소기가 높다. 최근에 빚어졌던 방관자효과 사건들을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소름끼치도록 얼음장 같은
지난 1일 만우절, 중국의 한 누리꾼은 대낮 거리와 공원, 쇼핑몰 등에서 아이를 납치하는 UCC를 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남자아이의 입을 막고 들쳐안은채 뛰어가는 장면을 연출했다. 영상에 직힌 사람들은 모두 이를 외면했다. 어떤 이는 동행자에게 "쳐다보지 말고 못본척 하라"고 지나쳤다.
지난달 산시(山西)성에서 한 노파가 길거리에서 넘어져 쓰러졌지만 아무도 돕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길거리 CCTV로 확인한 결과 노파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이들은 모두 25명이었다.
지난달 1월 허난(河南)성에서 길에 넘어진 한 노인은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고 지나치자, 급기야 “저는 스스로 넘어졌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라고 외쳤고,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노인을 돕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오후 4시 중국 광저우(廣州)시 화두(花都)구에 있는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안의 한 남성은 창문을 통해 건물밖으로 탈출하려했지만, 창문은 쇠창살로 막아져 있었다. 남성은 창틀에 매달려 살려달라며 있는 힘껏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이 남성은 끝내 사망했다. 길을 가던 한 목격자는 이 장면을 그야말로 차분하게 촬영했다. 그가 촬영한 42초 분량의 동영상은 '화재장면 촬영자의 잔인성을 드러낸 42초'라는 제목으로 확산됐다. 중국 소방당국은 '경멸스럽다' '비열하다'고 촬영자를 비난했고, 중국 동방망(東方網)은 이 사건은 "시대의 치욕"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