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
![3m 깊이로 판 경주 월성 유적지 발굴 구덩이.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6/03/31/20160331051039297189.jpg)
3m 깊이로 판 경주 월성 유적지 발굴 구덩이.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관청들로 보이는 통일신라시대 후기 건물터 14기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 이하 연구소)는 30일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지난 1년간 발굴조사를 한 결과 월성 중심부인 C지구에서 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동서 51m, 남북 50.7m 규모의 정사각형 형태 부지 안팎에서 모두 14기의 건물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미지 확대
![경주 월성 C지구에서 출토된 흙으로 만든 벼루 조각들.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6/03/31/20160331053012958445.jpg)
경주 월성 C지구에서 출토된 흙으로 만든 벼루 조각들.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연구소 측은 "건물과 담장의 건축 시기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 등으로 미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며 "담장과 건물 6개동을 먼저 지었고, 이후 공간 확보 등을 위해 한쪽 담장 일부를 허문 뒤 건물 8동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벼루 조각 이외에도 토기와 기와류 등도 대거 발굴됐다. 그 중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같은 명문이 새겨진 것들이 있는데, 전인은 궁궐 부속관청으로 기와나 그릇 생산을 담당한 와기전의 실무자, 본은 신라 6부 중 하나인 본피부 그리고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던 궁궐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지 확대
![C지구에서 확인된 일곽의 건물지군의 모습.[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6/03/31/20160331053418575480.jpg)
C지구에서 확인된 일곽의 건물지군의 모습.[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고고학계가 주목해온 월성 발굴조사는 지난해 3월부터 4개 구역(A~D지구)으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연구소는 "지난 1년간은 C지구를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며 "올해는 C지구에 이어 A지구의 성벽, 성벽 바깥 해자에 대한 조사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고학자이기도 한 심영섭 소장은 "(발굴 과정에서)유적 파괴는 절대 없어야 한다"며 "연 1회 정도 세미나를 열어 발굴 성과를 확인하고 향후 조사 방향을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사는 고고학 발굴 원칙에 입각해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라의 궁성인 월성은 서기 101년 파사왕 때 쌓기 시작해 935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대대로 왕이 기거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일본 고고학자들이 처음 발굴을 진행한 후 100년 만인 지난 2014년부터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 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 차원에서 국내 연구진의 발굴이 본격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