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개봉한 영화 ‘무수단’(감독 구모·제작 골든타이드픽처스㈜·제공 배급: 오퍼스픽쳐스)은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고 이후 그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최정예 특임대가 벌이는 24시간의 사투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무수단’은 복귀작이자 스크린데뷔작이죠. 많은 분이 부담이나 걱정은 없느냐고 물어요. 물론 부담도 걱정도 많죠. 하지만 계속 망설이기만 한다면 영화를 못 찍을 것 같았어요. 처음 도전하는 것에 있어서 계기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것저것 고민하면 시작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저지르고 봐야죠.”
“착용하고 있는 군장비가 실제 장비와 무게가 같았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총을 메고 뛰고 달리는데 진짜 진땀이 나더라고요. 달려야 할 지형은 안 보이고 가파르고 돌부리나 웅덩이는 왜 이렇게 많은지.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는 게 일상이었죠.”
드라마 ‘태왕사신기’부터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 이르기까지. 액션 연기에는 도가 튼 이지아였지만 특임대 여장교의 액션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짜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지아는 더욱 바삐 움직여야 했고, 노력해야 했다.
“남자 배우들보다 덩치가 작다 보니 자칫하면 연약해 보이거나 허술해 보일 것 같았어요. 한 무리의 군인처럼 보여야 하는데 저만 눈에 띄는 게 싫더라고요. 남자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파워풀하게 보이는데 전 그게 아니니까. 두 배, 세 배는 더 노력해야 했어요.”
군인처럼 보이고 싶었다.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진짜 군인처럼” 말이다. 그는 해외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거나 여군들의 모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군들만 찾아보던” 그는 어느 순간 성별이 아닌 군인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여군들의 모습만 중점적으로 찾아보다가 깨달았어요. ‘여군도 그냥 군인이구나’하고요. 성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더라고요. 그래서 남자 군인들의 모습까지 찾아보곤 했죠. 공통으로 느낀 것은 훈련받을 때의 표정이나 절제된 몸짓 같은 거였어요. 비장하고, 파워풀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많이 따오려고 노력했죠.”
절제된 몸동작이나 강렬한 눈빛은 늘 그랬듯 이지아의 장기였다. 액션 연기에 최적화되어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못지않은 여군의 면모를 보여줬다. 하지만 으레 배우들이 그렇듯 이지아는 “아쉬운 부분부터 보이더라”며 멋쩍어했다.
“어떤 부분은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은 아쉽기도 하고. 하하하. 그래도 경례하고 뒤돌아 나가는 장면은 진짜 같지 않았나요? 그런 부분들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껴요. 특히 그 경례 신 같은 경우는 스태프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었어요. 진짜 같다고요. 배우들이나 스태프들, 감독님께서 ‘후반부로 갈수록 여군 같아 보인다’고 해주셨었어요. 그런 말들에 힘을 많이 얻었죠.”
소위 말하는 ‘멋쁜(멋지고 예쁜)’ 얼굴이다. 이리 보면 여성스럽고, 또 저리 보면 소년 같은 모습에서 구모 감독이 왜 그를 신유화 중위 역에 쓰고 싶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년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짧은 머리를 하면 아이돌 같다, 예쁜 소년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제가 머리는 기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하하. 머리에 따라 얼굴이 바뀌어 보이나 봐요. 제가 ‘태왕사신기’에 출연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구모 감독은 극 중 신유화 중위의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군인으로서의 냉철한 모습과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끌어내기 위해 감정선과 다양한 모습을 포착했다. 이는 여군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들을 지우려는 노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독님이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어 했어요. 여군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들 말이에요. 강할 것 같고 여성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에 대한 것들이죠. 하지만 그들도 여자고 누군가의 여자친구예요. 평범한 여자라는 이야기에요.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바로 이점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빨간색이 정말 안 어울리는데 감독님이 ‘꼭 빨간색!’이라고 하셔서 제가 가진 제일 빨간 립스틱으로 발라봤죠.”
구모 감독은 신유화의 여성성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이지아는 ‘성별’을 잃었다. 현장의 남자 배우들과 함께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는 것이 일상이었고 심지어는 군복 한 벌로 촬영 내내 버티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여군 같은 생활이었다.
“촬영 초반에는 그래도 여자 대접을 해줬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군인처럼 대하더라고요. 하하하. 나중에 사석에서 반바지를 입은 적이 있는데 다들 놀라더라니까요. ‘너 왜 이렇게 가녀려! 다리가 왜 이래!’라고요. 아무래도 저를 여배우로 안 보신 것 같아요. 하하.”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이지아는 신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가수 서태지와의 결혼과 이혼, 시나리오 작가 등 그를 둘러싼 많은 말과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신비주의’는 결코 이지아의 선택은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하는 건데 저의 직업보다 외적인 것이 두드러져 아쉬워요. 사람들이 저를 떠올릴 때 배우라는 것보다 다른 걸 먼저 떠올리니까요. 저는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만큼 좋아하기도 하고요.”
고민이 많았다. 말문을 떼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기자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그다음에 뭔가를 이뤘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그에게서 연기에 대한 갈증과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온전히 배우로 각인되고 싶어요. 좋은 배우로요.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도 많이 해야겠죠? 다양한 역할도 다 해낼 수 있어야 하고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대중에게 ‘믿고 볼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데뷔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에 비해 작품이 부족하잖아요. 그런 것들도 정말 아쉬워요. 이제 정말 다작하고 싶어요. 다양한 작품에서 찾아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