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군부대 주둔으로 시민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문학산 정상을 지난해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에 맞춰 전면 개방한데 대한 인천 시민들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문학산 일대는 인천사의 발상지이자, 개항 후 인천의 중심지가 중구 개항장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인천의 읍치(邑治)로, 『삼국사기』에는 미추왕 비류가 남하하여 기원전 18년 미추홀(彌鄒忽)에 도읍을 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학산(文鶴山)’은 고을 관아 남쪽의 안산(案山)으로 여겨져 ‘남산(南山)’,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 하여 ‘학산(鶴山)’, 산성이 있어서 ‘성산(城山)’이라고 불렸다.
문학산 정상에는 테를 두른 듯한 모양의 산성이 있는데, 삼국시대 백제의 성으로 조사된 문학산성은 토축의 내성이 100m, 석축의 외성이 200m 가량 되는 규모로, 임진왜란이나 1871년 신미양요 당시의 국방상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역사성을 찾아 1986년 12월 18일 인천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1962년 군부대가 주둔한 이래, 현재까지 시민들의 문학산 정상부 개방 요구가 꾸준히 있어 왔지만, 군사시설인 관계로 허용되지 못했다가, 2015년 인천시와 국방부 간 협의를 통해 시민의 날인 10월 15일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시 관계자는 “인천의 역사가 시작된 문학산 전체가 인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인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인천 가치의 재창조를 위한 의미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