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법행정 참여 규칙 공포...일선 판사들 "판사들이 위원 선출해야"

2016-03-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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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해 4월 신임 법관에게 법복을 입혀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이 사법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해당 규칙을 제정한 이후 법원 내부 전산망(코트넷)에 "위원회 구성원을 판사들이 직접 선출하게 해달라”는 현직 판사의 글이 또다시 올라와 법원이 술렁이고 있다.

법원의 인사·정책 등 주요 결정에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법원 내에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의 취지대로 일선 판사들의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면 재판제도나 조직문화 개선 등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구색 맞추기'에 그칠 것이란 이유에서다.
법조 전문가들은 제도를 급하게 시행할 것이 아니라 위원회 구성이나 역할 등을 놓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위원회 구성·역할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관건'

지난달 22일 코트넷에 송오섭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가 ‘법관의 사법행정참여 제도화에 관한 건의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송 판사는 이 글에서 “사법행정위원회(가칭)에 참여할 위원들을 판사회의를 통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해야 한다”며 “어떤 경우라도 각 위원들의 과반수는 선출된 판사로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같은달 19일 제정된 대법원의 '법관 사법행정 참여를 위한 규칙' 공포가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글에는 다른 판사들의 지지글도 다수 올라왔다.

이후 같은달 26일 대법원의 규칙이 알려진 뒤 일선 판사들은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놓고 큰 관심을 드러냈다.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위원은 고법원장이 관내 소속 법관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서 위원을 추천한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의견 조회 등의 방법으로 위원 참여를 희망하는 법관들의 자원이나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A부장판사는 "고법원장이 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지만 고법원장의 의중에 따라 현장의 의견들이 무시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좀 더 체계적인 의견 수렴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B부장판사는 "예전부터 일을 처리할 때마다 일선 판사들의 입장을 고려할 것이라고 대법원이 밝혔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꼭 다수결의 원칙으로 위원들을 선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우려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C판사는 "일선 법원에서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자를 사법행정 업무에 배치하는 것이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의 뜻과는 다르다"며 "법원 사무분담은 각 법원장의 입장이 반영, 작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을 추천하는 고법원장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실제 제 목소리를 내는 등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을 가리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달 중순까지 코트넷에 위원회 전용 게시판을 만들어 의견을 수렴키로 한 만큼 위원 구성과 관련한 다양한 일선의 생각들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일선 판사들 "위원회 역할과 권한 범위도 중요"

대법원이 밝힌 규칙에 따르면 위원회는 각 소관 사항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이 부의한 안건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다시 법원행정처장에게 건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선에서는 위원회의 임무를 규정한 규칙 제3조 규정이 '건의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위원회의 권한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D판사는 "규칙에 따르면 '모든 법관은 법원행정처장과 위원장에게 위원회 회의에서 심의할 안건을 제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법원행정처장은 이 같은 제안을 고려해 위원회 회의에서 심의할 안건을 결정·회부한다고 기재돼 있다"며 "하지만 제3조에서 말하는 위원회 임무는 '심의한 결과를 법원행정처장에게 건의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위원회의 역할이 회부된 안건에 대한 의견만을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회부된 안건에 대해서만 의견을 개진할 경우 일선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다는 이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조직법에 규정된 '판사회의'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판사는 "법원조직법에 근거가 있는 '판사회의'로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 판사회의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같다"며 "과거에는 사무분담도 판사회의로 결정하곤 했지만, 현재는 과거만큼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대법원의 조치가 제대로 운영이 돼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올해 상반기 위원회 출범 목표로 구체적 준비...일선 판사들 의견 반영할 것"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사법행정에 관한 법관들의 의견 수렴과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위원회를 운영하는 법관의 사법행정 참여를 위한 규칙을 공포하고 같은 날 시행에 들어갔다.

대법원이 공포한 규칙에 따르면 현장의 목소리는 4개의 창구를 통해서 전달된다.

구체적으로는 ▲법관의 근무환경, 처우, 재판부 운영방식을 논의하는 법원문화개선위원회 ▲재판제도의 개선을 담당하는 재판제도발전위원회 ▲법관의 윤리에 대한 정책을 논의하는 법관윤리심의위원회 ▲주요 사법정책의 수립 및 추진, 배경과 관련된 사항을 맡은 사법정책기획위원회가 신설된다.

다만, 규칙에는 4개 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제도 시행 첫해임을 고려해 법원문화개선위원회와 재판제도발전위원회만 우선 활동을 시작한다.

위원회는 소관 업무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이 부의한 안건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건의한다.

이들 위원회는 위원장 1인을 포함, 11명 이상 17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회에 별도의 분과를 설치할 때는 17명보다 위원 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위원은 일선 고법원장이 관내 소속 법관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서 위원을 추천한다.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의견 조회 등의 방법으로 위원 참여를 희망하는 법관들의 자원이나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추천된 위원들은 법원행정처장이 위촉하고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법원행정처장이 지명한다.

위원장과 위원의 임기는 1년이며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고 위원회 심의사항 등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말아야 할 비밀준수 의무를 진다.

법원행정처는 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무지원단을 두고 지원단의 단장이나 간사가 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의견진술이나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같은달 25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법관의 사법행정 참여를 위한 규칙 제정에 대한 안내 말씀'이라는 글을 올렸다.

임 차장은 "법원행정처는 올해 상반기 중 위원회 출범 및 회의 개최를 목표로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했다"며 "법관 여러분의 의견을 파악하고 반영하기 위해 코트넷에 위원회 전용 게시판을 3월 중순까지 설치할 계획이며 위원 선정, 안건 제안, 위원회 개최 일시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은 다시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원회가 성공적으로 출범해 법관 사회의 소통과 공감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원회 구성과 안건 모집 등 이후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법조 전문가들 "대법원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관행 버려야"

송 판사의 글이 올라오고 지지를 받는 것은 대법원의 주요 정책결정에 일선 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거의 모든 권한을 대법원장이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해도 구성원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못하고, 인사를 생각해 윗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실정이다.

지난해 상고법원 추진이나 최근 법관 인사가 대표적이다. 판사 사이에서 불만이 있어도 좀처럼 목소리로 표출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위원회 구성과 역할도 대법원의 의지대로 정해진다면 대법원과 일선 판사들과의 괴리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송경태 법조문화개선회 실장은 "일선 판사들이 대법원을 신뢰하게 만들기 위해선 이번 위원회 결성에 판사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야 한다"며 "대법원과 일선 판사들이 계속해 반목하게 되면 사법부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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