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주’ 박정민의 걸음걸이

2016-02-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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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송몽규 열사' 역을 열연한 배우 박정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배우 박정민(29)는 다소 느리게 걷는다. 갈팡질팡 망설임 없이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는 걸음은 곧고 정확하다. 돌이켜본 박정민의 발자취는 어딘지 모르게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필모그래피와도 닮아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박정민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걷고 있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제작 ㈜루스이소니도스·제공 배급 메가박스㈜플러스엠) 개봉 전 아주경제와 만난 박정민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한 애정과 고심의 흔적을 감추지 않았다. 오래도록 공들여 푼 문제에는 작품과 역할에 대한 존경심이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엔딩 장면에서 윤동주, 송몽규 선생님의 사진이 올라오는데 울컥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어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더 잘했어야 하는데’하는 아쉬움이 컸죠. 사실 그 누가 와서 연기를 하더라도 송몽규 선생님을 100% 구현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다만 보는 분들이 ‘송몽규 선생님께서 이렇게나 치열하게 살았구나’하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송몽규 열사' 역을 열연한 배우 박정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강하늘 분)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 분)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연기해야할 송몽규에 대한 경이와 부담감, 죄스러움에 시달린 사실을 털어놨다.

“촬영 전에 송몽규 선생님 묘소에 찾아갔어요. 막막한 마음에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곧 그런 마음 자체가 죄스러워요. 누구도 돌보지 않은 묘소를 보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에 비해 마땅한 결과물이 없던 독립운동가 송몽규는 대중에게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과정이 아름다웠지만, 결과가 아쉬웠던 송몽규는 오늘날 대중들에겐 이름조차 희미한 존재가 되었다. 알아갈수록 경이롭고, 죄스러운 존재에 대해 “연기를 완벽하게 해서 관객의 기억에 남을 거야”라는 생각은 저 멀리 치워버렸다. 영화계에 처음 기록될 송몽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감과 두려움, 부담감이 뒤따랐다.

“이 캐릭터를 두고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습더라고요. 물론 송몽규를 연기하면서 기교를 부릴 수는 있겠죠. 하지만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 없이 기교만으로는 송몽규를 표현할 수 없었어요. 즉 ‘학생들을 규합하고 일본군이 미얀마를 점령한다’는 등의 대사를 그저 생각 없이 줄줄 읊기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송몽규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시대적인 배경과 연쇄적인 상황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 했어요. 멋은 필요 없었어요. 가장 순수하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송몽규 열사' 역을 열연한 배우 박정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의 말마따나 관객에게 박정민은 ‘최초’의 송몽규다. 이에 대해 박정민은 “그분을 소개하는 영화인데 연기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배반”이라고 했다. 단호하고 확고한 얼굴은 어딘지 비장하기까지 했다.

“알고 연기하는 것과 모르고 연기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그는 송몽규의 취향, 사상, 삶에 대해 하나씩 배워나갔다.

“처음 ‘동주’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는 막연히 ‘아싸,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만 생각했어요.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사실이에요. ‘진짜 해주신대?’하고 마냥 신났었죠.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겠어요.”

기회라고 했다. “함께 달리던 동료들이 자신을 앞지르고 텅 빈 운동장을 달리는”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별다른 성과가 없어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던” 그는 운명처럼 ‘동주’를 만났고 막막한 길에 방향을 찾게 되었다. 거기에 윤동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과 이준익 감독이라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법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송몽규 열사' 역을 열연한 배우 박정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런 기분 있죠. 아령을 들고 운동하는데 턱밑에서 힘이 빠져버리는 거예요. 딱 한 번만 들면 될 텐데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요. 딱 그 시점에 이준익이라는 트레이너를 만나서 숨을 고르고 아령을 번쩍 들어 올린 거예요. ‘아, 내일도 운동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든 거죠.”

운명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딱 그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동주’라는 작품은 박정민에게 “조금 더 걸어도 된다”는 지침 같았다.

“모든 장면을 허투루 찍고 싶지 않았어요. 책임감 있게 찍고 싶었고,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었어요. 가슴 속에 돌덩이가 들어찬 기분이었는데…. 물론 (강)하늘이는 더 심했겠죠?”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송몽규 열사' 역을 열연한 배우 박정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매 순간이 배움이었고 긴장이었다. 그렇게 간절히 알아가고자 했던 송몽규인 만큼 “촬영할 당시와 지금,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뀐 부분”이 궁금했다. 박정민은 큰 눈을 깜짝거리면서 단박에 “없어요”라고 말한다.

“판타지에요. 송몽규는 아직 제게 판타지 같은 분이죠(웃음). 그분에 대해 다 안다고 하면 멍청한 대답이고요. 이제 가까스로 절반을 알게 된 것 아닐까요? 다가갈수록 위인이라고 생각되었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죄스러웠어요. 부담감을 평생 안고 살겠다는 기사 제목을 본 적이 있는데 딱 그 심정이에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가 얼마나 송몽규라는 인물에 대해 공을 들었고 고민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박정민에게 ‘동주’가 주는, 필모그래피에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이미 제 안에 어떤 의미로 남았어요. 말로 설명을 못 할 정도로요. 복합적인 감정이에요. 저를 변화시킨, 마음가짐을 고쳐먹게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후에 제가 나태해질 때마다 들춰보고 스스로를 혼낼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아요. 의미들은 연기하면서 살이 붙어가겠죠? 앞으로 만날 때마다 물어봐 주세요. ‘동주’는 네게 어떤 작품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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