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신문 김종호 기자 =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에 거주하는 서모씨(61)는 지난해 10월 해당 지역의 한 공인중개업소를 통해 94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그러나 이사를 온지 두 달 만에 자신이 이중계약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의자인 김모씨(56·여)가 남편의 중개업소에서 서씨의 집주인을 속이고 이중계약을 통해 전셋값을 빼돌렸던 것이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만 50여명, 피해액도 90억원에 육박하는 상황. 그러나 해당 중개업소가 가입한 중개사고 손해배상 보장보험의 보장금액은 연 최대 1억원으로, 피해자 50여명이서 200만원씩 나눠 가져야 하는 셈이다.
공인중개업소 중개사고에 따른 손해배상 보장금액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전국 주택 평균 전셋값이 2억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연간 1억원에 불과한 손해배상 보장보험으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전국 9만명에 달하는 중개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법 개정에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최근 부동산시장 회복세에 전국 주택 가격이 지속 상승하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중개업소가 가입한 중개사고 손해배상 보장보험의 한도는 연 최대 1억원에 불과하다.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제24조에 따라 개인은 1~2억원, 법인은 2~4억원의 손해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하나, 대부분의 중개업소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연 최대 1억원을 보장하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공제보험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억원 책임보험에 가입한 중개업소의 중개사고로 받을 수 있는 피해보상 금액은 계약 건수나 손해액수에 관계없이 1년간 1억원이 최대다. 이마저도 1년 내 해당 중개업소에서 발생한 중개사고로 1억원의 보험금이 모두 지급됐다면, 이후 발생한 사고에 있어서는 어떤 피해자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부천 중동 부동산 이중계약 사건’의 피해자인 강모씨(57)는 “지난 10년간 열심히 모은 전 재산을 사기 당했다. 그러나 보상금액이 1억원에 불과하고 건당이 아닌 연간 최대 1억원 한도에 그쳐 피해액의 5%도 보상받지 못하게 됐다. 요즘 수도권의 허름한 전셋집도 1억원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시대와 너무 동떨어진 제도 아닌가”라는 말로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국토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2012년 중개업소의 중개사고에 따른 손해배상 금액을 연간 1억원이 아닌 건당 1억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보험금 부담 문제와 보험기금 고갈 등을 이유로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개정안을 슬그머니 폐지했다.
국토부는 최근에도 관련 민원에 대해 ‘중개업 육성방안을 마련한 후 보험가입 금액 상향을 검토할 예정이다’, ‘중개업을 육성한 후 보장금액을 인상할 예정이다’라고 답변해왔으나, 본지 취재결과 보험금액 상향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나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 부동산산업과의 한 관계자는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보험가입 금액을 상향해야 하나, 현재 중개업 형편상 금액 상향이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지난해 중개수수료 인하 등으로 이미 업계의 집단 반발이 심한 상황에서 당장 이를 실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최근 주택가격 상승세를 고려할 때 보장금액을 단순히 1억원 정도 올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먼저 중개업에 대한 육성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