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충성 경쟁에 밀리던 병두는 겨우 '나는 네 편'이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권력욕에 취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힌다. 그러나 승승장구의 말로는 결국 믿었던 사람들에 의한 '배신'이다. 딱 10년 전에 나온 유하 감독의 영화 '비열한 거리'의 줄거리다.
20대 총선이 약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천을 받으려는 예비후보들 간 경쟁이 뜨겁다. 유독 귀에 들리는 단어는 '진박(진실한 친박)'이다. 홍보물과 명함에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간 것은 예사다. 박 대통령과의 친분이 없으면 아예 선거에 명함도 못 내미는 양상이다. 심지어 대구지역 예비후보 6명은 함께 모여 식사를 한 사진을 공개하며 '진박'을 인증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윗선의 비위를 맞추기에 혈안이 됐던 병두와 영화 속 인물들이 이들의 사진 위로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일부는 청와대와 정부에서 일하다 '물갈이'를 운운하며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에게 밀려 한 후보는 지역구를 옮기는 웃지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증샷을 찍은 이들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앞으로도 자주 회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구 발전을 위해 뛰겠다는 이들의 선언이 박 대통령을 향한 충성맹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비박계는 철저하게 진박 마케팅을 비난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7일 진박 마케팅에 대해 "역효과가 나지 않느냐"라며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완장을 차려고 하고 권력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김 대표도 권력 사유화에서 자유로워보이진 않는다. '정치개혁'이라며 상향식 공천을 강조한 김 대표는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 험지 출마를 제안하며 최고위원직으로 보상했다. 불출마를 선언한 문대성 의원은 김 대표의 뜻에 따라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기로 하고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영화는 수족들의 충성을 뒤에서 조종했던 권력자의 노래로 끝이 난다. 내 곁의 사람들이 진실한 친구였는지를 묻는 가사다.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며 계파이익을 주장하는 이들이 과연 국민의 편에 서는 사람인지, 이번 총선에서 판가름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