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고]국부 논란에 부치어

2016-01-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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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호]

경기북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조지훈의 ‘지조론’에 언급된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는 속담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변절을 경계하고 옥에 티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조의 세계 속에서 이는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장구한 시간 속에서 각각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뤄야 하는 역사에 있어서만큼은 마지막 순간이 전체의 시간을 전적으로 대변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도 그 전에 거쳐 간 수많은 순간의 하나일 뿐이다. 의도적으로 순간의 기록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순간의 가치를 무시한다면 이는 후대에 대한 호도요 사실에 대한 왜곡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중국인들은 제환공을 춘추 5패로서 중원의 패자로 알지, 폭정 끝에 유폐되어 그 시체를 구더기에게 60일간 파먹힌 암군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말년의 타락에 비해 구정(九鼎)을 바로 세운 위업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당 현종을 논함에 안녹산의 난으로 대표되는 실(失)보다 ‘개원의 치’로 대표되는 득(得)을 더 중하게 다루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이다. 한(漢)과 명(明)을 건국한 유방과 주원장의 통치 말년 행한 폭정이 엄연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중국인들에게 이들은 한과 명의 국조(國祖)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역사의 시계를 대한민국의 현대사로 옮겨 보자. 1960년 4월 27일 민주혁명 속에서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은 역사의 뒤안길로 나앉는다.

두 차례의 무리한 개헌과 3·15 부정선거의 끝에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의 말년은 제환공의 그것 못지않게 비참했다. 1960년, 그 순간만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반백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도 4·19 혁명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은 그러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최고 표창인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첫 번째 수훈자이다.

혹자는 이 훈장이 재임 시절 수여된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치가 없는 건국훈장 수훈자는 훈격을 박탈당했다.

즉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에 대한 공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에 의해서 인정되는 것이다. 애국계몽운동가로 시작해 외교독립론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이어진 이승만의 경력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으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한 공헌도 독립운동가로서의 그것에 못지않다.

6·25전쟁의 극복과 한미동맹 체결에는 부연이 필요치 않다. 다만 대한민국의 이념인 민주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영향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임기 말의 과오로 인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승만 그 자신은 민주주의의 신봉자였고 제헌국회의 의장으로서 대한민국헌법을 제정한 인물이다. 즉 민주주의 도입자로서의 이승만의 면모 또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사에 기록된 분명한 족적이다.

마지막 순간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지조에 있어서는 마지막 순간이 전체 과정을 대표할 수 있고, 사람들이 가장 쉽게 기억하는 순간 또한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의 영속성을 반영하는 역사에서 마지막이라는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고, 특정 순간을 각별히 다룰 수도 없다. 행정학에서 ‘평가기간 전체의 실적이 아니라, 최근의 실적이나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를 가리키는 근시성 오류(Recency Error)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남 이승만에 대한 현재의 인식과 평의 공정성이 완전무결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마지막 순간의 과(過)로 인해 60년 이상 쌓아온 공(功)이 모두 사장되어야 한다면 개인적으로도 애석한 일이겠지만, 엄정한 포폄으로 후대의 감계가 되어야 할 역사라는 공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이념을 위협한 사실에는 비판이 따라야 하겠지만,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수호한 사실마저 옥석구분(玉石俱焚)으로 매조지어져서야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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