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해 세계와 소통하겠다.”
장원(粧源)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회사가 나가야 할 지향점을 이렇게 제시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장원의 모친 윤독정 여사는 1932년 전 재산을 털어 개성 자남산 자락에 있는 기름시장에 ‘창성상점’을 열고, 직접 동백기름을 짜 만든 머릿기름을 팔았다.
1939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장원은 어머니로부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해방 한달 여 후인 1945년 9월 5일 국내 최초의 화장품 제조회사인 ‘태평양화학공업사(현 아모레퍼시픽)’를 설립했다.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나의 어머니다. 우리 회사는 여성이 키운 기업이다”라는 그의 말은 여성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뜻인 동시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을 잇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원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 실용주의적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기술과 정성으로 아름다움과 건강을 창조해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신용제일주의, 기술제일주의, 협동정신 등이다. 광복후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위조 상품이 기승을 부리던 때에도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정직하게 승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1호 제품이 국내 최초 독립 브랜드인 ‘메로디크림’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사업의 끈을 놓지 않던 그는 1954년 후암동에 업계 최초로 화장품 연구실을 만든 데 이어 1956년 회사를 용산으로 이전했다.
외국 화장품업체와 기술제휴를 시도한 일도 태평양이 국내 최초였다. 정부의 반대를 극복하고, 1959년 프랑스 화장품업체 코티사와 기술제휴로 출시한 ‘코티분’은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태평양화학공업사는 국내 화장품업계 의 본격적인 기술제휴의 시대를 열었다.
장원은 품질좋은 제품 생산 및 기술개발에 멈추지 않고 미용정보지 발간, 방문판매제도 도입, 소비자 대상 미용강좌, 마사지 서비스 제도 실시 등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해 국산제품보다 외제품이 좋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장원은 차(茶)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다인(茶人)’으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녹차를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던 1970년대 후반부터 차 문화 보급을 위해 제주도와 강진, 해남 등의 황무지에 대규모 차밭을 조성했다. 30여년간 꾸준한 관심과 투자로 국내 녹차문화를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자문했다. 그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화장품 외길이야말로 나의 꿈이고 삶 자체이며, 화장품 없는 내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속에는 ‘인류를 아름답게, 사회를 아름답게’라는 슬로건을 실현시키려 한그의 ‘아름다운 도전’이 그대로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