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연합뉴스 TV 캡쳐]
특히 지난 6일 북한이 감행한 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가 파행을 걷고 있는 가운데 당분간 남북간 빙하기를 면치 못할 것이란 분석이다.
20일 연합뉴스는 대북 소식통의 말을 빌어 "김영철은 김양건의 후임이 확실하다"며 "통전부장과 함께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의 비서직까지 물려받았다"고 보도했다.
18일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이날 김무성 대표 주재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 김양건 후임 통전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내정 - 정책연구실 대외비' 제하의 보고서에서, 김양건 전 통전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비어 있던 자리에 김 정찰총국장이 내정됐다고 언급했다.
주로 대남 일꾼이나 외교관 출신이 맡아오던 통전부장에 군 출신인 김영철을 임명됐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김영철은 당 비서로 임명되면서 군복을 벗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일각에서는 공작 전문가인 김영철이 대남총책을 맡게 되면서 북한의 대남정책을 가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군부내에서 대남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철의 부상은 과거 온건파인 김양건과 비교했을 때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영철을 통일전선부장으로 내정했다면 이는 남북관계를 강대강으로 끌고 가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노동당 비서는 김기남, 최룡해, 박도춘, 최태복, 강석주,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김평해 등 9명이었다.
노동당 비서는 전문부서의 부장보다 높은 직책으로 김영철이 김양건의 뒤를 이어 대남담당 비서와 통전부장을 겸하고 있다면 명실상부한 대남총책으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군 출신이 당 비서로 임명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미국 소니사 해킹사건,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의 배후로 알려진 군부의 핵심 인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남북대화에 관여한 북한 군부 내 대표적인 대남통이기도 하다.
그는 1989년 남북 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때 북측 대표였고,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 때도 북측 대표단에 참여했다.
이후로도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 북측위원장(1992년) △남북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2000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2006~2007년) △남북 국방장관회담 북측 대표단(2007년) 등을 맡아 남북대화에 관여했다.
2009년 중장에서 상장으로 승진하면서 대남공작 사령탑인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에 임명됐다.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함정 간 교전이 발생한 직후인 2014년 10월 7일 남측에 '긴급단독접촉'을 제의하면서 남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파트너로 김영철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남측이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을 회담 대표로 수정 제의함에 따라김영철은 같은 달 15일 류 실장과 서해 NLL, 대북전단 문제 등 남북 현안을 놓고 회담을 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