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박두병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택하겠다”

2016-01-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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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11)

연강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사진=두산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사업가일수록 이익에 치우쳐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정당하게 이윤을 추구하되 번 돈은 양심껏 유익하게 써야한다.”

두산그룹 초대 회장인 연강(連崗) 박두병 회장은 생전 ‘하늘이 도움을 주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하고,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인화만 같지 못하다(天時 不如地利 地利 不如人和)’는 옛말을 즐겨 인용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두산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장수 기업이다. 창업주 매헌(梅軒) 박승직이 1896년 서울 종로4가 배오개(현재의 연지동) 인근에 포목점인 ‘박승직 상점’을 연 이래, 올해로 120년 주년을 맞는다.

1910년 매헌의 장남으로 태어난 연강은 1936년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박승직상점에 합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마련했다. 합리적인 경영과 직원을 위한 복지 제공에 힘쓴 그는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다”“기업의 미래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인간 중심의 경영철학을 세웠다. ‘사람이 미래다’는 경영철학은 오늘날 두산그룹의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강은 1946년 박승직상점 사명을 두산상회로 바꾸고, 사업분야를 무역업으로 확장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에는 그가 지배인으로 일하던 일본 쇼와기린맥주를 인수해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를 설립, 우리나라 음료산업을 개척했다.

1953년에는 두산산업, 1960년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1967년 윤한공업사 설립, 1968년 한국병유리(현 테크팩솔루션) 인수 등을 통해 사업영역을 넓히고, 근대적인 경영체제를 확립했다.

동산토건사와 윤한공업사, 한국병유리는 소비재사업 위주인 두산그룹의 사업분야가 중공업 전환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두산의 사업구조개편이 연강때부터 진행돼 왔음을 보여준다. 

또 연강은 1969년 한국경제 사상 최초로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 자신의 후계자리를 정수창 회장에게 넘겼다.

연강은 음료산업부터 소비재, 무역, 건설 등에 이르기까지 13개 회사를 세워 매출을 무려 349배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는 기업경영에 있어 결코 지름길을 찾지 않았다. ‘한말 한말 쌓아 태산같이 이룬다’는 뜻을 가진 사명처럼 정도를 걸으며 기업을 키워갔다.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택하겠다면 그 생각이 옳다. 좋은 시도가 있는 실패는 한번의 기회를 잠깐 놓치는 것뿐이지만 부끄러운 성공은 수많은 기회를 모두 잃게 할 수도 있다.” 그가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은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나침반 역할을 했다.

연강은 1967년부터 별세한 1973년까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아 상공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편, 한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직위를 이용해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으로 외자도입심의위원을 맡은 연강이 외자유치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박 대통령은 두산이 먼저 자금을 사용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끝내 사양했다. “이익도 도의를 밑바탕으로 할 때 정당한 것이 되며 도의를 배척하는 재능, 지식, 발명은 생명이 길지 못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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