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세 생일맞은 한어병음 창시자 저우유광,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라"

2016-01-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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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유광[사진=바이두]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한어병음의 아버지'로 불리는 저우유광(周有光)이 13일 111세 생일을 맞았다고 중국신문사가 전했다.

'저우유광문집’의 기획자인 예팡(叶芳)은 "저우유광은 여전히 낙천적이고 적극적이며 호기심에 넘쳐있다"며 근황을 소개했다. 그는 "저우유광의 베이징 집에는 아직도 손님이 끊이지 않으며, 손님의 말을 장시간 경청할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우 선생은 안 좋은 것들을 빨리 잊고 남을 원망하지 않으며, 재미있고 아름다운 일들만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며 "고속철을 타고 고향인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를 가고 싶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저우 옹은 20세기 격동의 중국사를 관통한 ‘산증인’이다. 청(淸)조 말기 광서제 32년인 1906년에 태어나 중국 최초의 서양식 대학인 상하이의 세인트존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1949년 신중국이 건립되자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저우 옹은 당시 문자개혁을 추진하던 당국의 권유를 받고 언어학자로 변신해 1958년 동료들과 함께 한어병음을 개발했다. 한어병음은 이후 문맹퇴치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고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중국어를 입력하는 기반이 돼 중국의 국제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저우 옹은 1960년대 말 문화혁명 때 ‘반동분자’로 몰려 2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이후 “공산당은 전통문화를 말살함으로써 중국을 ‘문화적 황무지’로 만들었다”며 “덩샤오핑(鄧小平)도 개혁개방으로 뛰어난 정치를 했지만 1989년 톈안먼 사태가 그의 평판을 모두 망쳐 놨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85세에 퇴직한 저우 옹은 100세 이후 저술한 책이 10권이나 될 정도로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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