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월별 분양승인 실적 및 5년 평균 수치. [제공=국토교통부]
아주경제 노경조 기자 = 정부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규제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 심사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건설업계의 밀어내기 분양으로 인한 공급과잉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아직 미분양 정도가 대책을 내놓을만한 단계는 아니라지만 주택시장이 장기적인 추세 전환에 들어갈 경우 매수 심리가 더욱 냉각되면서 잠시 되살아났던 주택시장의 불씨가 꺼지지 않을까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누적된 분양승인물량은 49만3000가구로 이전 5년(2010∼2014년) 평균의 1.8배였다. 국토부가 추산한 연평균 주택수요(34~44만 가구)를 이미 상당히 초과한 셈이다.
특히 10~11월 두달 동안 분양승인 물량이 15만3000가구로 11월까지 누적물량의 31.8%를 차지했다. 건설사들이 주택시장 호전 분위기가 남아 있는 연내에 분양을 마무리하기 위해 밀어내기에 열을 올린 결과다. 건설사가 인·허가와 착공을 같은 해에 받고 진행한 비율도 2009년 33.0%, 2011년 44.6%, 2013년 50.1%였으나 올해는 11월까지 61.4%로 높아졌다.
정부는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분양이 극에 달한 반면 같은 시점에 대출규제와 미국 금리인상 등의 악재가 맞물리면서 시장의 흡수능력은 오히려 악화된 점을 미분양 급증의 원인으로 꼽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주택매매가격 상승이 둔화하고 주택거래량도 감소하고 있다"며 "공급물량 자체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주택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심리가 연말로 가면서 많이 떨어진 것도 미분양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주택업계의 자율조절이 선행돼야 한다'는 정부의 기대대로 건설업체들은 내년 분양 계획 물량을 올해보다 큰 폭으로 줄인 상황이다.
부동산114가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 64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내년 분양예정 물량을 조사한 결과 올해(약 42만9000가구)보다 11만가구 줄어든 32만여가구로 조사됐다.
대우건설은 올해 약 4만2000가구를 분양했으나 내년에는 2만2000여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대림산업도 올해 3만3000가구를 분양한 데 반해 내년에는 1만가구 이상 줄어든 2만여가구의 공급을 준비 중이다. 삼성물산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위주로 분양을 진행한다.
사상 최대의 분양물량이 나왔던 올해보다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역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공급물량이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정부의 대출규제 등으로 시장의 소화능력은 갈수록 악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가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에 대한 우려로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피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심사강화를 통해 우회적인 대출 죄기에 착수, 신규 분양시장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사실상 집단대출을 규제한 것"이라며 "심사요건이 까다로워 분양시기를 조절하는 건설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악화될 경우 자금조달 능력이 약한 중견 주택전문업체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11월과 12월에 수도권과 지방에서 세개 단지의 분양을 추진했던 한 주택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적인 규제는 안한다고 하지만 공급과잉 우려를 표명하는 자체가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신호)을 주는 것"이라며 "특히 금융권의 경우 알아서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추는 경향이 있어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여건도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중견 주택업체들의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내년 국내 주택시장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가라앉을 것에 대비해 해외건설시장 진출 방안 모색에 나섰다. 그러나 저유가 여파 등으로 해외시장도 만만치 않은 상황인데다 일부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진출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건협 관계자는 "기술력 등이 뛰어나지 않은 이상 해외시장 진출에 제약이 많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함께 진출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