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파리 푸아시에 있는 빌라 사보아 하중을 부담하는 벽이 없다. 파사드와 평면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으며 가로로 길게 낸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최대로 들일 수 있다. [사진=뉴욕현대미술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한국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거형태는 단연 아파트다. 성냥갑처럼 생긴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부(富)’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중산층은 물론 부유층까지 아파트를 선호한다. 이런 시류를 따라 아파트는 갈수록 고급화, 고층화되고 있다. 반면 현대 아파트의 효시로 불리는 거대 고층 공동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1952·프랑스 마르세유 소재)은 단순함의 극치다. 스위스의 천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지은 건물이다.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거 형태였다.
1920년대 전까지만 해도 집은 자고로 크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그 시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코르뷔지에의 건축 양식은 기하학을 근간으로 건축물에 균형과 질서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든 건축물이 그렇듯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도 과학이 담겼다.
옥상에 꾸며진 정원을 처음 시도한 것도 코르뷔지에다. 그는 필로티로 생긴 공간 손실을 옥상에서 만회했다. 옥상정원에 있는 녹색식물은 여름에는 열기와 햇빛, 겨울에는 추위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커튼’ 역할을 한다. 옥상을 얇은 흙으로 덮거나 식물을 두면 여름철 실내 온도가 3도 정도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코르뷔지에는 건물 하중을 벽이 아닌 기둥으로 견디게 했다. 이로 인해 층마다 건축가가 원하는 대로 개방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과거 건축 양식은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벽을 똑같이 나눠야 했다. 코르뷔지에의 기법으로 공간 손실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을 ‘자유로운 평면’이라는 이론으로 정리했다.
그는 빛이 들어오는 양도 건축 기법을 통해 조절했다. 창의 넓이가 같을 경우 수직으로 길게 만든 창보다 수평으로 늘린 창이 빛을 4배 더 많이 받는다.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물의 ‘벽’은 무게를 받지 않기 때문에 긴 수평 창을 낼 수 있다. 그는 이를 이용해 빛이 실내에 가득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