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 시·도가 차세대 먹거리를 육성하기 위해 덩어리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주는 ‘규제프리존’을 내년부터 시행한다. 정부가 16일 발표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내용이다.
사물인터넷(IoT),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유전자의학 등 지역별 전략산업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되는 입지·업종 규제는 아무리 민감한 것이라도 규제프리존에선 적용되지 않게 된다. 재정 지원에만 의존하던 기존 지역 산업정책을 제대로 육성시키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도입한 각종 특구, 첨단단지, 투자지역과 마찬가지로 유사·중복분야가 많고 기업의 실제 투자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다수의 지자체가 사물인터넷, 전기차 등에 대한 유사 산업을 전략으로 내놨다.
◆ 규제프리존 내 토지이용 간섭 없어진다
그동안 지역 전략산업은 지방자치단체가 각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상의해 제안한 것을 중앙정부가 심사해 결정했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규제 개혁이 어려움을 겪자 지역 단위로 규제를 풀어 난국을 돌파한 일본 ‘국가전략특구’를 기본 모델로 삼았다.
부산광역시 전략산업은 해양관광과 사물인터넷(IoT) 융합 도시기반 서비스다. 부산 지역에서만 마리나선박 대여업이 허용되는 선박 기준 규제가 5t급에서 2t급으로 완화되고 IoT 관련 주파수 기술이 시범 적용된다.
대구광역시에 한정해 자율주행자동차 시내도로 운행이 점진적으로 허용되고 전남은 스마트그리드와 드론, 대전광역시는 IoT 서비스용 첨단센서와 유전자의학 산업을 키운다. 울산에서는 수소자동차와 3D프린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전략산업 관련 규제를 풀어줌과 동시에 재정·세제·금융지원도 집중할 계획이다. 지역 전략산업과 관련한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폐율 특례 등 토지이용 규제도 줄인다.
각 지자체가 내년 1분기까지 전략산업 육성계획을 제출하면 정부는 완화해야 할 핵심 규제와 정부지원 방안을 마련하고서 내년 6월에 규제프리존 지정·운영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 총선용 정책 남발 우려…기업 투자가 관건
그동안 지역경제에 대한 정부 지원은 특구·기업도시·혁신도시 등으로 쪼개져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여러 지역이 중복적으로 같은 사업을 키우겠다고 나서 차별성도 부족하다.
이미 자유무역지역, 외국인투자지역, 산업단지, 첨단복합단지, 연구개발특구가 각 지역에 하나씩 들어서며 사실상 지역 특화산업은 관심 밖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규제프리존 역시 이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시작 전부터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견해가 높다. 각 지역에 2개씩 나눠주기 식으로 전략산업을 선정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 신재생에너지를 전략 산업으로 내놨는데 관련 산업 자체가 없다. 지역에너지 5개년 계획 수립도 내년부터 착수한다. 관련 기업이나 산업을 집약시킬 수 있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유사·중복사업 선정을 최대한 지양했다지만 수소연료차, 전기차, 자율주행자동차 등 자동차 관련 산업과 IoT 관련 산업, 에너지산업에 지역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미래 먹을거리로 키우는 전략산업을 결정하는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 주재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규제프리존이 처음 제안된 것은 지난 10월 7일이다. 이후 정부는 지난달 2일에 지자체 대상 설명회를 열고 30일까지 전략사업을 신청 받았다. 두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셈이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규제 개혁의 원래 의도는 정부 개입을 줄이는 것”이라며 “정부가 전략산업을 조정하고 조세·재정을 활용한 지원 패키지를 만드는 등의 정책을 펴는 데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선심쓰기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백 교수는 “규제프리존 의도는 좋지만 각종 비효율과 정경 유착 등 부패 발생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와 전략산업을 발굴할 예정”이라며 “특정 지역에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해주는 식으로 접근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