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알면서도 갔다. 강릉행을 결정하면서 “정확한 날짜도 잡히지 않은, 내년 하반기 방송예정인 드라마의 행사에 뭐가 있겠느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에도 이건 해도 너무 했다. 지난달 30일 강원도 강릉 씨마크호텔과 오죽헌 일대에서 진행된 SBS 드라마 ‘사임당 the Herstory’(연출 윤상호/극본 박은령/제작 그룹에이트·엠퍼러엔터테인먼트코리아)의 이야기다.
제작사에서 뿌린 보도자료의 말을 빌리자면 “이날 행사에는 일본,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250여명의 국내외 취재진이 대거 참석했다.”
강릉 경포대 앞에 또 하나의 바다를 이룬 수백명의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30분 남짓한 기자회견이었다. 드라마를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한국관광공사 정창수 사장이었다. 정 사장은 “한국의 여름과 겨울의 대표 휴양지인 강원도가 SBS ‘사임당, the Herstory’ 제작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인의 휴양과 힐링의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여타의 기자회견과 다를 바 없는 이 날 행사가 왜 강릉에서 진행됐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국관광공사는 행사 직후 “한발 앞선 해외 홍보와 선제적 관광 상품화를 위해 이번 해외 유력 언론인 및 여행업자 초청 행사를 준비했다”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오죽헌에서 진행된 야외촬영은 아비규환과도 같았다. 촬영장 세팅을 위해 외신을 포함한 수백명의 취재진이 수십 분을 덩그러니 서 있었던 것이나, 현장 요원이 “이 장면은 국내 기자를 위한 것이니 외신들은 나가 달라”고 외신에게 ‘한국말’로 고함쳤던 것은 그날 벌어진 ‘사건’ 중 가장 작은 것이었다.
이날 강릉에서 수백명의 기자가 본 것은 30분 남짓한 기자회견, 한복을 입고 오죽헌을 거니는 송승헌, 그마저도 한복이 아닌 현대복을 입고 “버스 시간 다 됐어”라는 대사 한마디를 날리는 이영애가 전부였다.
한국까지 방문한 외신기자에게 ‘한복을 입은 이영애’라는 최소한의 성과도 얻을 수 없게 만든 무책임한 제작사, 무질서했던 현장을 자랑인양 찍어 보도자료를 낸 철없는 한국관광공사를 대신해 ‘사임당, the Herstory’을 향한, 강원도를 향한 뜨거운 취재 열기를 위해 동원된 외신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