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3월 충남 대덕(현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5년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58기)와 1948년 4월 육군사관학교(5기)를 각각 졸업했다. 이어 같은 해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환한 고인은 공군 학사사관후보생 2기로 임관했다.
공군대학총장, 공군사관학교장, 공군참모차장 등의 주요 보직을 거쳐 1964년 8월부터 1966년 7월까지 제8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1948년 항공부대가 창설되면서 이 부대로 배속돼 초기 항공부대 창설 요원으로 활약했다. 항공기지사령부로 전속된 이후 공군 창설 초기 항공부대의 병력충원을 위해 공군사관학교 교수처장으로 교육 임무를 담당했다.
6·25전쟁 중에는 공군사관학교 부교장 겸 교수부장으로 사관생도 교육과 전투비행단의 작전 및 후방지원 임무를 맡기도 했다.
참모총장 재임 때는 북한 공군이 미그-17, 미그-21 전투기를 보유하자 공중 전력 열세를 극복하려고 F-86 전투기를 대체한 F-5A/B를 도입해 초음속 공군 시대를 열었다.
일명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로 불리는 F-5A/B는 100여대가 도입됐고 지금은 모두 퇴역했다.
고인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결정이 내려지자 부상환자와 물자 수송을 위한 장거리 운항을 위해 C-54 수송기를 도입했다.
또 공군군수사령부를 창설해 체계적인 군수지원체제를 확립하고 항공기 창정비와 통신전자장비 정비능력을 확보하는 등 공군 군수능력을 한단계 높였다.
고인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은성충무 무공훈장(1951년), 금성충무 무공훈장(1953년), 무성 을지무공훈장(1954년), 3등 근무공로훈장(1962년), 1등 근무공로훈장(1963년)을 비롯한 미국 공로훈장(1965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3남이 있다. 영결식은 3일 오전 7시 공군장으로 거행된다. 빈소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 (02)2227-7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