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베니테스의 커리어에 리그 우승 횟수는 많지 않다. 그는 2001년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의 감독을 맡으며 최고의 감독 중 한명으로 떠올랐다. 그는 부임시즌인 2001-2002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2003-2004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레알과 바르셀로나 팬들을 경악케 했다.
하지만 그의 리그 우승 기록은 여기가 끝이다. 그는 2004년 리버풀 감독이 되며 발렌시아 떠났고, 이후 리버풀-인터밀란-첼시-나폴리를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지나치게 수비적이고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강팀을 상대로 걸어 잠그는 약팀들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했다.
물론 강팀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떤 팀을 상대로 하든지 승점은 똑같은 법, 그의 전술은 각기 다른 전력의 팀들과 38경기나 치러야 하는 리그 경쟁과는 어울리지 않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표는 7승3무2패로 바르셀로나에 승점 9점 뒤진 3위다. 패배한 경기는 2경기로 같지만 무승부가 3경기나 많다. 작년까지 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인 팀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토너먼트라면 얘기가 다르다. 베니테스는 발렌시아를 맡은 이 후로 거의 대부분의 시즌 작은 규모라도 컵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발렌시아에서의 마지막해인 2003-2004시즌 팀에 유로파리그 첫 우승컵을 안긴 게 시작이다.
리버풀로 부임한 첫 해 2004-2005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올림피아코스, AS모나코에게 패하며 3위에 득실차에서 앞선 2위로 겨우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하지만 베니테스의 진가는 토너먼트에서 발휘됐다. 16강전에서 분데스리가 강호 바이어 레버쿠젠을 1,2차전 합계 6-2로 대파하더니 8강전에서는 파비오 카펠로의 유벤투스를, 4강에서는 조세 무리뉴의 첼시를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 무리뉴의 후임으로 세리에A 인터밀란을 맡게 된 베니테스는 리그에서 7위까지 추락하는 등 성적 부진으로 경질설이 나오는 가운데서도 클럽 월드컵을 우승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또 2012-2013시즌에는 디 마테오 감독의 후임으로 첼시와 단기 계약을 맺은 후 리그에서는 3위에 그치면서 유럽대항전에서는 구단 최초로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후 자리를 옮긴 나폴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곤자로 이과인, 호세 카예혼, 로렌조 인시녜, 마렉 함식과 같은 화려한 멤버를 보유하고도 리그에서는 2013-2014시즌 3위, 2014-2015시즌 5위에 그치는 등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2013-2014시즌 코파 이탈리아를 제패하며 역시 토너먼트 강자임을 입증했다.
그가 토너먼트에 강한 이유는 리그에서 약한 이유와 맥락을 같이 한다, 공격진을 비롯해 모든 선수들의 수비 가담을 중시하며 단단하게 경기를 운영하기 때문에 그가 맡은 팀들은 대부분 지지 않는 경기를 해왔다. 토너먼트야 말로 “골은 팬을 부르고 수비는 우승컵을 부른다”는 격언이 어울리는 승부 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베니테스의 팀들은 리그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내온 것이다.
더군다나 로테이션을 통해 토너먼트의 중요경기를 타팀보다 월등히 좋은 컨디션으로 치룰 수 있다. 리그 경기에서는 비록 로테이션 멤버들이 출전해 승리를 따내지 못하더라도 단판 승부로 결정지어지는 토너먼트에서는 주전 선수들을 총 출동시켜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게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테이션의 부재로 컵 대회에 강하고 리그에서 약하던 안첼로티 감독과 정반대의 특징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베니테스에게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국제 대회 단기전 감독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만큼 베니테스의 ‘토너먼트 특화’는 유별난 정도다. 2013-214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라데시마’를 달성한 레알마드리드가 11번째 우승을 노린다면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