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직면한 국내철도산업, 지원책 마련 ‘시급’

2015-11-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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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윤정훈 기자 = 국내 철도업계가 수익성 악화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현재의 수주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철도산업이 존폐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현대로템은 26일 창원공장에서 회사 임직원을 비롯해 성신RST, 케이비아이테크 등 주요 협력사 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위기에 처한 국내철도산업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현대로템이 개최한 이날 간담회는 국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위기에 처한 국내철도산업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지난해 현대로템의 철도부문 매출은 1조7000억원 규모로 이중 해외수주는 6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해외수주는 2012년 1조7000억원을 정점으로 2013년 1조4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하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던 2012년과 비교하면 3년 사이 해외수주가 65%나 감소한 셈이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영업손실 42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올 3분기까지 현대로템의 철도 신규수주는 약 2500억원, 해외수주는 8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현대로템의 철도부문 매출은 1조711억원, 영업손실 17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로템은 해외수주 감소의 원인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해외에서 동력을 상실 한 점을 꼽고 있다. 중국의 양대 철도차량 제조사인 CNR과 CSR의 합병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CRRC의 지난해 매출은 168억 유로(약 20조60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은 지난해 자국 철도산업육성 및 해외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양대 철도차량제조사를 합병한 바 있다.

정부차원의 지원도 막강하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동남아시아에 100억 달러(한화 약 11조원)의 인프라 관련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협조해 아시아 인프라 확충에 1100억 달러(약 127조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경쟁을 이어갔다. 또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속도에 발맞춰 현재 3년 걸리는 공적개발원조(ODA) 수속절차를 중요 사업의 경우 최대 1년 6개월까지 단축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철도 완성차량 제작업체를 보유한 글로벌 국가들은 자국 철도산업 보호를 위해 1국가 1사 체제를 유지하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또 자국 철도회사의 해외수출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해가고 있다. 프랑스, 일본, 중국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이 모두 정부차원의 금융지원과 비즈니스 외교를 통해 자국 철도기업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자체 현지화 기준을 마련해 자국 철도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미국은 철도차량 제작 시 비용 기준 60% 이상의 자국 자재 사용을 의무화했으며, 중국은 현지화 70% 및 합작법인을 의무화 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이런 규정이 전무한 실정이다. 국내 철도시장은 완전 경쟁시장으로 돌입한지 오래다.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 이후 정부기관 발주는 모두 국제공개경쟁입찰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 철도시장 역시 민간투자와 국가조달사업 등 모든 프로젝트에서 국내외 업체간 경쟁구도다. 실제로 2003년 인천공항공사 IAT를 수주한 미쓰비시(일본)를 시작으로 2008년 대구시 3호선을 수주한 히타치(일본) 등이 국내 철도시장에 진출한 사례다.

영세한 국내 철도산업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최저가 입찰에 기반한 국내 철도시장의 무한경쟁 체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는 게 국내 철도업계의 주장이다. 국내 철도차량 시장 규모는 연평균 5000억~6000억원 수준으로 세계 철도차량 시장(약 72조원)의 1% 미만의 소규모 시장이다. 현대로템은 200여 개 주요 1차 부품업체를 비롯한 1800여 개 부품업체들과 협력해 차량을 만들고 있으나 국내 부품사 대부분이 종업원 50명 미만의 중소 영세업체다. 한국철도차량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관련 부품업체의 연평균 매출은 13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현재 정부는 조선·해양·건설 등 수주산업에 대해서는 금융 및 보증지원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일례로 건설업계에 대해선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도급사업 보증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정책금융기관에서도 해외건설·플랜트 금융지원 규모를 확대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더불어 ODA 등 저개발국 사업발굴을 위해 정부차원의 수주지원과 개발금융을 도입하는 패키지형 지원사업을 강화하기도 했다.

국내 철도시장의 노후차량 교체 문제도 심각하다. 현행 도시철도법은 노후차량 교체와 관련하여 별도의 내구연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올해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도시철도법에선 관련 규정 자체를 삭제했다.

사실상 전동차를 무기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성적자 상태인 국내 발주처 입장에서는 예산을 투입해 노후 전동차를 교체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신규 노선에 필요한 차량 구입 때는 정부가 구입비용의 50%를 지원해주지만 노후차량 교체는 운영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점도 국내 철도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

각 발주처의 철도차량 구매방식이 여전히 최저가 입찰제도로 추진된다는 점 역시 철도산업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 지난 13일 기획재정부는 제15차 재정전략협의회에서 공공조달시장 입찰방식을 최저가에서 최적가치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긴 입찰∙계약비리 방지 및 계약효율성 향상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최저가 입찰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부실공사를 막겠다는 게 기재부의 취지다. 그러나 적용대상은 300억원 이상의 공사에 해당되며 정작 제조물품에 속하는 철도차량은 이번 입찰제도 변경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외에서는 대부분 최저가 입찰제도를 지양하고 종합평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대로템이 지난 2013년 인도에서 수주한 1조원 규모의 델리메트로 3기 전동차, 2009년 그리스 아테네 전동차 프로젝트는 가격 부문에서 각각 2위, 3위에 그쳤지만 기술력, 운영실적 등을 종합적인 평가에서의 우위로 수주한 대표적 사례다.

최저가 입찰제로 인한 폐해는 국내 전동차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전동차 1량당 가격을 보면 지난 2004년 서울메트로에 납품된 2호선 전동차는 9억3천만원 가량이었으며, 2014년 2호선 신규전동차 1량당 가격은 10억5천만원이었다. 서울메트로 2호선의 지난 10년동안 전동차 가격 인상률은 13%에 불과한 셈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재 창원공장은 생산량이 급감해 일부 생산라인이 가동을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며 “의장공장 기준내년 1월 생산량은 69량으로 가동률이 103%가 되겠지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17년 12월에는 생산량 14량으로 가동룔이 21%까지 급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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