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광연 기자 =산업군에서 ‘아버지’라는 칭호을 얻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 특히 그 대상이 해당 업계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함께 3대 게임인으로 꼽히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국내 온라인게임의 ‘초석’과 ‘전성기’를 일군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아버지로 불린다. 게임 업계의 유일한 ‘아버지’라는 점은 그가 국내 게임 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현재 사전 공개서비스가 진행 중인 ‘문명 온라인’에 대해 송 대표는 “느낌이 좋다”며 가볍게 웃었다. 세계적인 PC 명작 ‘시드마이어의 문명’을 온라인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이 게임은 5년의 개발기간을 거친 엑스엘게임즈의 야심작이다. 국내를 시작으로 대만,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 진출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송 대표는 “지금은 제품으로서의 게임이 만연한 시대”라며 “경쟁 중심의 양산형 게임이 넘쳐나는 현상이 아쉽지만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한번쯤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수익 측면에서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재미’라는 게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으로서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 송 대표의 목표이자 철학이다.
실제로 ‘문명 온라인’은 결제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덕분에 고객들로부터 ‘정직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송 대표는 “먹고 살 만큼만 벌면 된다”며 앞으로도 과도한 결제 유도는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추진중인 기업상장(IPO) 역시 같은 선상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엑스엘게임즈만의 경영 철학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올해 결산을 마치고 조건이 충족되면 곧바로 상장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면서도 “상장을 한다고 해도 주주들에게 휘둘려 돈을 벌기 위한 게임을 억지로 개발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른바 ‘작가주의적’인 송 대표의 스타일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재 엑스엘게임즈는 모바일게임 개발에도 많은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총 4개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며 이 중 횡스크롤 RPG ‘브레이브스’는 이르면 연내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게임빌과 퍼블리싱 계약을 맺은 ‘아키에이지 모바일’ 역시 내년 상반기 서비스가 유력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키에이지’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텐센트를 통해 진출한 중국에서 꾸준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국내 게임으로는 이례적으로 북미‧유럽(트라이온)에서도 반응이 좋다. 여기에 러시아와 일본까지 진출하며 폭넓은 인프라 확보에 성공했다. 향후 엑스엘게임즈의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아버지’이자 온라인게임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 송 대표지만 온라인게임의 ‘제2전성기’가 도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큼은 말을 아꼈다. 이미 온라인게임 시장이 성장 한계에 직면했기에 과거와 같은 기록적인 발전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무엇보다 굳이 온라인을 할 이유가 없었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디바이스 위에서 어떻게 온라인게임의 재미와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송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게임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엑스엘게임즈는 앞으로도 돈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남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