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은 취임한 첫해인 1993년 당시 8·15 광복절을 일주일 앞두고 내각에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해 경복궁을 복원하고,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국책사업으로 건립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일제의 잔재인 오욕의 건물을 철거해 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동시에, 문민정부가 일제에 대항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겠다는 의지였다.
바로 이튿날 문화부는 용산가족공원 4만500평 규모의 부지에 1994년부터 7개년 계획으로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니만큼 역사로서 보존돼야 한다는 정치권과 학계의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대역사(大役事)의 결정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는 비판도 일었다.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지은 건물이니 모든 비용을 들여 건물 자체를 자국으로 통째로 옮겨가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반대편으로부터 독선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애초 2000년에 완공할 계획이었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외환위기 등의 변수로 2005년에 문을 열었다.
아울러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국내로 반환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든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1993년 고속철 수주를 위해 방한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휘경원 원소도감' 상하 두 권을 가져와 한 권을 한국에 반환했다. 이때부터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직제의 기틀이 만들어진 것도 김 전 대통령 집권 때부터다.
문화부는 1993년 체육청소년부를 흡수하면서 '문화체육부'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4년 교통부의 관광기능이 문화체육부로 처음으로 이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