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신희강·노승길 기자 = 올해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악재(惡材)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인상, 유가 급락 등에 따른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둔화로 국내 경제에 미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0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수출 부진으로 내수도 동반 침체에 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내년 역시 한국경제가 2% 성장 수준으로 점쳐지면서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높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방치할 경우 한국 경제가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단순히 정부의 성장목표치 달성을 위한 단기성 정책 남발이 아닌 중장기 정책을 고려한 전략을 짜야한다는 조언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자간 경쟁 동맹을 중심으로 한 머리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응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주경제신문이 창간 8주년을 맞아 기획한 '리멤버 7080'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국내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본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반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연평균 거의 10% 가까운 성장을 했다. 산업화를 통해 압축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시기다. 하지만 1992년경 부터 성장률이 6%대로 떨어지면서 일종의 탈 공업화, 탈산업화가 이뤄졌다. 이후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줄고 줄어든 일자리가 저임금일자리로 이동하게 되면서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되고, 소득양극화로 나타나게 됐다. 이는 내수부진, 기업투자감소 등으로 이어지면서 내수와 수출 모두 취약한 현재까지 오게됐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 지난 1970~80년대 한국경제 부흥기 시절에는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는 추격형 경제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우리 고급인력의 저렴한 인건비가 비교우위에 있었다. 지금은 반대로 추격이 아닌 중국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도 일본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 더 이상 고급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면서 비교우위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세계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만 해도 2000년대 이후 한계에 봉착하면서 6~7% 성장대로 내려앉은 상태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 = 1970~80년대는 노동시장 측면에서 봤을때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노동의 질과 양이 좋았던 시기다. 인구구조론으로 봤을때도 베이비부머 세대여서 노동 생산성도 충분했다. 성장측면에서 중요한 봤을때 우리 경제의 주요 생산요소인 노동과 자본 모두 크게 성장했다. 지금은 고령화 시대이며, 대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이 잘 안된다. 노동의 질과 양 모두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투자 여건도 일부 업종에서만 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대외 수요보다는 내부 수요측면에서 성장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선진국들에서도 어떤 단계의 소득에 이르면 정체에 머물렀듯이 현재 한국경제는 과거처럼 고도성장을 할 수 없는 그런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1970~80년대는 우리가 선진국을 쫓아가는 모방형 경제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수월했다. 그 당시에는 잉여인력도 많았었고 자본생산성도 높았다. 하지만 현재 들어서는 잉여인력 자체도 줄고, 인구구조도 감소하면서 생산가능인구도 줄게 됐다. 성장의 중요한 요소가 노동, 자본이 아니라 생산성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전환이 잘 되지 않고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제조업을 위주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 들어서는 제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원인과 활성화 방안은 무엇인가.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 현재 제조업 부진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시장 측면에서 경직성으로 인해 고급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면서 비교우위가 사라진 상태다. 다른 한가지는 우리경제를 이끌고 있는 수출의 감소세를 들 수 있다. 세계 교역 증가율은 2012년 0.6%, 2013년 1.2%. 2014년 1.0% 올해 5월까지 -11.9%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인 것이다. 수출 품목 자체에 있어서도 세계 교역 패턴과 괴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제품에 우리나라만 집중적으로 올인하고 투자하는 것이 우려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고도성장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정책 아래 제조업을 키웠다. 우리나라는 경공업을 한 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해서 90년대 초까지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뤘다. 선진국도 제조업을 고부가가치화 시켜서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자기들의 시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 역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본집약적인 산업생산 방식에서 아이디어 집약적으로 전환해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뤄야 한다고 본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 = 지난 1970~80년대 우리나라 제조업 상황은 현재와 많이 다르다. 당시에는 중국이 침체되 있었고 일본은 이미 그 당시에 선진국이었다. 신흥국에 경쟁자가 없어 우리나라의 가격경쟁력이 좋았던 시절이다. 반대로 지금은 제조업이 성숙됐고 더 이상 값 싼 노동력으로 경쟁할 수 없게 됐다. 기술로 경쟁력을 쌓아야 하는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만드는 것이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의 R&D 예산 비중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다만, 매년 예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 개발이나 보안 등에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우리나라는 내수가 크지 않아 제조업을 하면서 수출 위주의 성장전략을 짰다. 문제는 선진국처럼 서비스업과 내수가 동시에 커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서비스업 발전이 느린 상황이다. 중국만 해도 아직 개도국이기 때문에 제조업 비중이 높지만, 점차 내수와 소비 위주의 경제로 전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도 노동과 자본 투자를 통한 성장보다는 생산성 높은 제조업으로 가야한다. 이와 함께 서비스업의 비중도 훨씬 늘려가야 한다.
◇최근 TPP, FTA 등 전 세계적으로 다자간 통상협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보는가.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 앞으로 TPP와 RCEP까지 포함하면 5~10년 뒤에 주요 국가들은 동일 경제권이 된다. 다만,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선점효과가 중요하다. 한번 선점했던 시장이 뺏긴다면 되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선점한 곳을 빼앗기지 않는 정부 차원의 면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한국은 수출주도형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수출 주도형 국가는 세계 교역량이 나쁘게 되면 같이 타격을 보게 된다. TPP나 FTA는 상대방 시장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우리는 개방 이후부터는 중국, 인도한테는 가격경쟁력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1등 상품,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 = 다자간 협상을 통한 대외개방은 경쟁력 측면에서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관세 철폐 측면에서 봤을때 당장 현대나 기아차들은 안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서로 교역을 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존재한다고 본다. 옛 사례를 보면 농산품 개방할때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됐지만 정부의 보조금 지원으로 점차 개선되고 있다. 정책쪽인 측면에서도 기업들의 무역장벽 해소 등에 대한 지원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세계계교역량 자체가 위축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우리도 수출 시장이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출시장이 작아지는 상황에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각 나라별로 있는 무역장벽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 교역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각국 나라별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무역장벽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경제협력을 공유하는 것이 글로벌 추세라고 본다.
◇향후 우리나라 새로운 먹거리 분야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한국경제가 가장 절실하게 주력해야 할 부분을 말해달라.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경쟁력이 있는 유망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약이나 규제를 정부가 풀어줘야 한다. 가령 기업들이 유망산업을 수출하는데 있어 비관세장벽 등 무역장벽에 막히는 부분을 정부가 해소해 줘야 한다.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와 경제주체, 기업 모두가 노력해 나가야 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다. 또한 창조경제의 핵심은 사람이듯 아이디어가 많은 것이 경쟁력이다. 지식집약적인 창조경제로 가려면 제조업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하고 적합한 금융, 법률, 제도 등 전체의 검토가 필요하다. 향후 한국경제는 단기적으로는 한국판 양적완화가 필요하다. 가계부채는 소득증가가 가장 좋은 해법이다. 소득을 증가시키려면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 향후 IT를 접목한 여러가지 제품들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데 제조업이라도 IT를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은 이런 부분은 중국보다 앞서고 있다. 서비스나 교육 의료 관광 등 모든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단순히 값싼 냉장고만 만들어서 파는 것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차라리 IT 제품을 접목한 고가의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 = 중국쪽에 진출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에서 제조업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닌 서비스 수출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업 서비스는 중국 진출에도 경쟁력이 꽤 높다. 단 중국 정부가 시장 주도가 아닌 정부 중심이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 정부와 사업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