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마치고 입을 굳게 다문 채 퇴장하고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 =서막이 열렸다. 설만 무성하던 야권발(發)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베일을 벗었다. 그런데 '고차방정식'으로 격상됐다. 야권발 정계개편의 삼각 축이 18일 일제히 주창한 혁신과 통합이 '올가미'로 전락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분 나누기'를 구태정치로 규정했다.
같은 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 측은 자신의 '4대 기조와 5대 혁신 구상'을 주류인 최재성 총무본부장이 '혼수 요구'에 빗대 표현하자 "반(反)혁신이자 망언"이라고 맞받아쳤다. 제3 정당 창당에 나선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민심은 이미 수명을 다한 정당을 떠났다"며 독자노선을 고수했다. 이쯤 되면 '루비콘 강'이다. 각자도생을 택한 이들이 스스로 교집합 지점을 봉쇄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호남 적자 경쟁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문 대표는 이날 '야권의 심장'인 광주를 찾았다. 지난 9월 예산정책협의 이후 76일 만의 방문이다. 문 대표는 조선대학교에서 '지금 여러분의 목소리가 역사입니다'라는 주제로 가진 특별강연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을 언급하며 "당 대표 권한을 공유할 수 있다"면서 임시지도부 구성을 전격 제안했다. 그러면서 백의종군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2·8 전국대의원대회 직후 단 한 번도 호남의 약한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던 문 대표가 '민주화의 성지'에서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해 '반박근혜' 지지층 결집을 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 대표의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애초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희망스크럼도 문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는 A안과 사퇴하는 B안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친노(친노무현)계 일부와 중도그룹이, 후자는 비노(비노무현)계 일부와 중도그룹이 각각 찬성하는 안이었다. '문·안·박' 희망스크럼으로 사분오열된 각 계파를 아우르기가 쉽지 않다. 탈당설까지 나도는 안 전 대표의 참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2·8 전대에서 구성된 최고위원회와의 권한 충돌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은 당내 의결기구다. '문·안·박' 희망스크럼이 최고위 기능을 실질적으로 대체한다는 것인지, 공식적으로 최고위를 폐지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특히 2·8 전대 때는 '단일성 지도체제 방식'으로 전대를 치렀다. 당 대표와 최고위를 분리 선출했다는 얘기다. 당헌·당규 위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지난달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와의 갈등에 대해 "충심어린 제안과 지적에 대해서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安측 주류 맹비난… 千신당 가속화… 野 문건유출에 '발칵’
더구나 광역단체장인 박 시장은 현행법상 선거조직과 당무 참여가 제한된다. 비주류 박지원 의원이 이날 한 라디오에서 문 대표 승부수에 대해 "국민은 꼼수정치로 본다"고 힐난한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앞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한때 당무를 거부할 당시 주장한 '공개·공정·공평'의 '3공 원칙'의 빛이 재차 바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각 계파 간 전방위로 퍼진 '불신'이다. 주류인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은 이날 '차기 총선 73석(지역구 61석+비례대표 12석)만 확보'라는 내용을 담은 당의 '20대 총선 획득 가능 의석 시뮬레이션(안)'이 유출되자, 즉각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를 '괴문서'로 규정하며 "윤리심판원에 회부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 물갈이' 수단인 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위원장 조은) 시행세칙은 이날 호남 의원들의 반발 속에서 최고위를 통과했다.
비주류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문 대표로부터 임시지도부 구성 제안을 받은 안 전 대표 측은 최 총무본부장의 '혼수 발언'을 향해 "협력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문 대표의 제안에 대해서는 "당을 걱정하는 분들의 의견을 더 들어볼 것"이라고만 답했다. 미완에 그쳤던 2012년 문·안 연대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천 의원은 이날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추진위원회'(창당추진위) 출범식을 열고 독자신당 창당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천 의원은 새정치연합 소속이었던 장진영 변호사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축사를 한 '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이날 기자들에게 "야권 재구성을 고민하고 있다"며 복잡한 속내를 내비쳤다. 야권발 정계개편이 고차방정식으로 격상한 이유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야권 일대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각 계파 세력이 혼재돼 있어 전망하기는 어렵다"면서 "결국 야권은 분열되면 선거 승리가 쉽지 않다. (당분간) 문재인호도 천정배 신당도 외연 확장 주도권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 신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추진위원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