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소현 기자 = 재계에 ‘추모의 계절’이 돌아왔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던 1세대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이 던지는 교훈은 오늘날 2‧3세 경영진이 맞닥뜨린 경제난국에 등불같은 존재다.
창업 1세대들의 기일은 11월에 유난히 몰려있다. 15일 고(故) 담연(湛然) 최종건 SK그룹 창업주 42주기를 시작으로 17일 고 정석(靜石) 조중훈 전 한진그룹 창업주 13주기, 19일 고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28주기가 이어진다.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의 창업자 담연은 이날 42주기를 맞았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자리 잡은 선영에는 담연의 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등 가족만 참석한 조용한 분위기에서 추모식이 진행됐다. 최태원 SK회장은 출소 후 3년만에 선영에 방문해 큰아버지의 기일을 챙겼다.
담연이 1973년 정부투자기관인 국제관광공사가 32억원에 내놓은 워커힐을 23억원에 사들이는 수완을 발휘한 것처럼, 최 회장도 46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계획과 CJ헬로비전 인수 등을 발표하며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고 있다.
다만 전날 발표된 면세점 사업자 결과발표에서 SK가 고배를 마시면서 선대회장 기일에 비보를 전하게 됐다. 23년만에 면세점 사업을 접은 SK가 창업주의 가르침에서 부진을 타개할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진그룹은 오는 17일 정석의 13주기를 맞아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경기 용인시 영덕동 선영에 조현아, 원태, 현민 등 세 자녀와 함께 선대회장을 추모할 예정이다.
조 회장은 올해 한진그룹 70돌을 맞아 중고 트럭 한 대로 시작해 대한민국 대표 육·해·공(陸海空) 기업으로 일군 아버지 정석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일대기를 출간했다. ‘수송보국(輸送報國)’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한진그룹의 재도약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말 ‘땅콩회항’으로 얼룩진 대한항공에 이어 최근 해운업계의 위기 속에 한진해운의 현대상선과 빅딜설 등 그룹내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관리의 경영을 뛰어넘은 ‘예술의 경영’을 선보인 정석의 ‘수송외길’ 가르침이 2‧3세 한진그룹 경영인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삼성그룹은 매년 호암의 기일인 19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뒤편 선영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와병 중인 아버지 이건희 삼성 회장을 대신해 지난해에 이어 할아버지의 기일을 챙길 예정이다.
호암의 추모식은 삼성그룹, 제사는 CJ그룹이 각각 챙겨왔다. 지난 8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 이맹희 명예회장의 장례식에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삼남매가 참석하는 등 화해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이번 추모식에서 범(凡) 삼성가의 ‘화합의 장’이 마련될지 주목하고 있다.
한편 기일은 아니지만 범 현대가는 아산(峨山)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를 진행한다. 탄생 100주년인 25일을 전후로 아산의 생애와 가치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기념식, 학술심포지엄, 음악회, 사진전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