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영일 기자 = 이번 서울과 부산 만료 분 시내면세점 특허 사업자 선정 결과, 뼈저린 패배를 맛본 롯데면세점과 SK네트웍스는 초상집 분위기다. '설마'라는 말조차 생각하지 않았 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두 업체가 각각 기존에 운영하던 시내면세점을 타 기업에 넘겨줘야 했던 원인은 크게 '내홍'과 '매출 부진과 입지 불리'로 요약된다.
먼저 롯데면세점이 세계 최고의 면세점으로 키우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롯데월드점을 면세점 신입생 두산에게 내 준 가장 큰 이유는 신동주·동빈 형제의 집안 싸움으로 귀결된다.
지난 7월 이후 불거진 경영권 싸움 과정에서 드러난 호텔롯데의 '일본기업' 논란과 독과점 지적 등으로 인해 롯데에 대한 여론이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실 롯데만큼 이번 면세 특허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우세를 보인 기업도 없다. 지난 1979년 소공점, 1988년 롯데월드점을 개장한 뒤 무려 35년이나 면세 사업을 운영하면서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세계 3위라는 위치까지 올린데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순수하게 면세점 운영 역량, 경험, 상품 소싱(조달) 능력 등의 측면에서 보면 롯데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1위 면세점이다.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매출은 지난해 기준 한 해 2조5000억원(소공점 2조원·월드타워점 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집중되는 여론의 관심에 관세청이 "롯데면세점도 다른 후보자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면서 불길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된 롯데의 '일본 뿌리' 논란도 심사 과정에서 각 위원들의 판단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더구나 이번 특허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롯데는 끊임없이 '독과점 논란'에 시달려왔다.
다른 후보 업체들은 '2014년말 매출 기준으로 면세점 시장 점유율이 53.4%(롯데가 AK로부터 인수한 코엑스점 포함)에 이르는만큼, 이제 다른 업체에도 기회를 줘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과점 논란은 이전에도 면세점 업계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롯데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은 것이다.
또 최근 신동빈 회장과 맞서 경영권 탈환을 노리는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의 집요한 공격도 롯데 월드타워점 탈락에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줬다.
현재 신 전 부회장은 롯데홀딩스와 전체 롯데그룹 경영권 경쟁에서 동생 신 회장보다 여전히 열세에 있다. 롯데홀딩스 종업원 지주, 임원 지주 및 계열사를 '우호 지분'으로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이 선택한 것은 신 회장의 경력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신 전 부회장이 끊임없이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 초기 적자를 부각시키고 총괄회장에 대한 롯데그룹의 허위 보고 등을 주장한 것이 모두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신 전 부회장 측은 롯데면세점 특허 재승인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경영권 분쟁 이슈를 부각시키며 사실상 '재'를 뿌렸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신동빈 회장 등을 상대로 한·일 두 나라에서 모두 소송을 제기했다"며 본격적인 반격을 알렸다.
바로 그 다음주 12일(월요일)로 예정된 신 회장의 '롯데면세점 상생 2020' 선포식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은 언론사를 순회하며 홍보전에 나섰고, 가는데마다 신 회장의 경영능력과 호텔롯데 상장 효과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면세점 결과 발표를 이틀 앞둔 지난 12일에도 신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또 다른 소송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자신이 일본 롯데홀딩스 및 롯데 계열사 이사직에서 해임되는 과정에서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이 거짓 정보를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제공한만큼 손해배상소송으로 죄를 묻겠다는 주장이다.
당시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면세점 특허 재승인 심사가 임박한 상태에서 신 전 부회장측이 경영권 분쟁 소송을 제기하고 집중적으로 언론에 갈등을 노출한 것은 면세점 특허 탈락과 이에 따른 면세점 운영사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 차질 등이 신동빈 회장 경영능력을 공격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 23년만에 면세점 사업 접은 SK…동대문 진출의 꿈도 사라져
SK는 이번 면세 사업자 선정 발표를 통해 23년만에 면세점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게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당초 SK네트웍스는 워커힐 면세점 수성은 물론 동대문 케레스타까지 획득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심 가졌다.
워커힐 면세점은 SK그룹(당시 선경그룹)이 1973년 워커힐 호텔을 인수한 뒤 1992년 호텔 안에 면세점을 두면서 시작됐다.
SK 워커힐 면세점은 쇼핑과 카지노, 숙박을 한 곳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도심형 복합 리조트 면세점이다. 특히 시계·보석과 국산품 차별화 전략을 통해 중국인 관광객(유커) 특화 면세점으로 성장했다.
이번에 자신감을 보였던 SK네트웍스가 지난해부터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워커힐 면세점의 면적을 지금의 2.5배 규모로 키우는 리노베이션 작업도 진행중이다.
SK네트웍스는 이를 통해 현재 4805㎡인 워커힐 면세점을 1만2384㎡로 확장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롯데월드타워점(1만990㎡)보다 크고 롯데 소공점(1만3355㎡)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때문에 일각에선 SK네트웍스가 이번 면세점 수성 실패로 경영에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SK의 또 다른 실패 요인으로 워커힐 면세점의 매출 부진이 꼽힌다. 23년 동안의 워커힐 면세점 운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은 2747억원으로 중소중견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약 2919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SK는 지난해 워커힐 면세점 매출이 2010년(1249억원)의 두 배로 뛴 점, 2013∼2014년 워커힐의 매출 성장률(46%)이 다른 시내 면세점 성장률(23%)의 두 배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심사위원들은 다른 도전 업체의 성장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도심에서 동떨어져 있는 워커힐 면세점의 입지 역시 불리하게 작용했다.
복합 리조트로서 카지노를 이용하는 VIP 고객의 충성도가 높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용산·명동·여의도 등 기존 면세점 입지나 새로운 도전자인 신세계와 두산이 입지로 정한 명동·동대문에 비해 일반 관광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이달 초 최태원 회장의 사재 60억원을 포함한 총 100억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는 등 면세점 재승인 발표를 앞두고 공익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이번 탈락으로 2020년까지 워커힐과 동대문을 연결하는 동부권 관광벨트를 조성할 것이라는 SK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면세점 영업이익 10% 사회 환원 등 동대문 지역과 동반 성장하기 위한 '11대 상생 약속'을 제시하고, 총 투자비 8200억원 중 24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도 헛 공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