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장슬기 기자 = 금융권에서 종이가 사라지고 있다. 창구 없이도 거래가 가능한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 온라인에서도 보험가입이 가능한 보험슈퍼마켓이 출범을 앞두고 있는 등 그야말로 '탈(脫) 종이시대'다.
이 같은 금융패러다임 변화는 금융거래 방식 자체를 바꿀 뿐만 아니라 비용절감으로 인한 가격 혁명까지 이끌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덜 드는 비대면거래가 각종 금융서비스의 가격 인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격에서 더 나아가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인터넷 및 모바일뱅킹 등을 통한 비대면거래 비중은 전체 금융거래의 88.8%에 달했다. 특히 입출금 및 자금이체 거래 등은 은행 창구를 통하지 않고 대부분 인터넷 및 모바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 핀테크 열풍이 몰아치면서 비대면거래 증가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2014년 1년 동안 전자금융거래 건수는 120억건, 거래금액은 무려 7경817조원에 달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금융당국은 내년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하기 위해 사업자 선정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으로 인해 금융권에는 또 한번의 가격 혁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중금리 대출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의 주요 신사업으로 꼽힌다. 기존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간 금리 격차를 인터넷전문은행이 차지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주요 사업으로 구상하고 있는 신용카드업도 복병으로 떠오른다. 인터넷으로 발급 가능한 카드를 최근 쏟아지고 있는 각종 '페이 서비스'와 접목한다면 가맹점 및 카드사와의 제휴 비용 등을 절감해 소비자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석규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ICT기업들이 주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될 경우 기존 은행의 기능을 이들이 대체할 여지가 있다"며 "변수는 과연 고객이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변할 것인가에 달려 있고, 비대면채널이라는 특성상 보안 및 인증 기술에 대한 검증문제도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보험슈퍼마켓 통한 본격 가격전쟁 개막
그동안 과도한 서명과 서류로 소비자 불편을 야기했던 보험 가입도 비대면거래 활성화로 점차 '탈 종이화' 되고 있다. 최근 보험설계사들은 서류를 없앤 대신 태블릿PC를 활용한 전자청약을 확대하고 있으며 나아가 스마트폰으로도 보험가입이 가능한 모바일 서비스가 잇따르고 있다.
올 상반기 삼성생명, 한화생명, 삼성화재 등 주요 생명·손해보험사의 전자청약률은 처음으로 40%대를 넘어섰다. 이들 보험사는 연말까지 전자청약률을 50%대까지 끌어올려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각종 비용을 절감한 대신 보험료를 줄인 것이 이들 상품의 특징이다. 온라인에서 가입 가능한 다이렉트 보험상품들은 직접 대면채널에서 가입하는 상품 대비 약 20% 보험료가 싸다. 아직까지는 '지인을 통한 보험 가입'이라는 풍속이 팽배하지만 온라인 보험의 저렴한 가격이 점차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면서 가입률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보험슈퍼마켓도 이 같은 가격경쟁을 본격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슈퍼마켓은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모든 보험사의 상품을 직접 비교하며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다. 보험슈퍼마켓 사이트 내에서 각종 보험상품과 보험료를 한 눈에 비교·확인할 수 있어 보험사들의 가격경쟁이 보다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금융사는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대면거래 확대로 절감된 비용을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돌려주고 활용할 것인지가 경쟁의 관건"이라며 "다만 가격 인하 여력이 없는 중소형사들의 경우 상당수 시장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비대면거래 확대, 편의성보다는 실질적 리스크 줄여야
이 같은 변화로 인해 소비자들이 더 나은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비대면채널 확대를 통한 절차 간소화가 근본적인 가격 인하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 금융권의 핀테크는 초기 단계에 불과한 만큼 아직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차원일 뿐 실질적인 가격 인하로 이어지기는 함들다는 것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은행의 경우에는 충당금이, 보험사는 책임준비금이 가격 결정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과연 인건비 및 사업비 등 비용 절감을 통해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상품 가격을 인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거래가 늘어날수록 불완전 판매율이 높아지는 등 절차 간소화가 양면성을 띄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며 "전자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는 금융서비스가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과 같이 불필요한 비용이나 금융범죄 등을 걸러낼 수 있도록 정교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