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균형이 있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국정화 자체가 균형 있는 내용을 기술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황우여 부총리는 3일 회견에서 중등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 해석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오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수정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데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국정화를 해 벌집을 쑤셔놓는 바람에 사회문제가 오히려 더 커지게 됐다"며 "앞으로 교과서 체제에 대한 시비가 계속 따라 붙을 것이고 정권 바뀌면 또 새로 만들려 할텐데 교과서가 정권의 전유물도 아니고 이 정권에서는 1년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교과서 발행체제가 어떤 것이 우월한지는 세계적으로 검증이 끝났고 방글라데시 등 네 나라밖에 국정으로 하는 곳이 없는데 국정화는 국격에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정역사교과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대한민국 수립을 1948년으로 기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작부터 이미 균형을 잃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기술은 뉴라이트 진영이 이승만 정부가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면서 공산화를 막는데 기여하고 우리나라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성과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대한민국 수립을 1948년으로 기술하는 것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임시정부의 법통성 계승 규정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일제시대 주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게 되면서 일제 식민통치를 인정하고 총독부의 법치를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나라가 역사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 자체가 균형을 잃을 가능성이 높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조선시대 왕이 있는 곳에 항상 사관이 있어 어떠한 권력에도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는 전통이 있었는데 민주주의 시대에 이같은 전통을 부정하는 전근대적인 국정화 조치가 이뤄져 한심하다”며 “국정화는 단순히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중대한 행위로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할 권리,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반민주적이고 반교육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역사교육을 학자들에 맡기는 것을 넘어 정치권이 개입한 것에서도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보수적인 내용의 교학사 한국사를 집필했던 학자도 검정 교과서의 편향성을 문제삼으면서도 검정이나 국정 발행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국정이든 검정이든 교과서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민들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정이냐 검정이냐를 놓고 싸우는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현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인데 꼭 국정 발행방식으로 가야 하나”라며 “꼭 국정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이 제도를 정부가 결정한 이유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검정 제도를 충실하게 하면 되는데 국정화가 목표가 될 수 있는지, 이렇게 진행되는 게 걱정”이라며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싸움이 돼야지 국정이냐 아니냐를 놓고 누가 이기고 지냐가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반대집회 등도 고조될 전망이다.
전교조는 7일 서울에서 열리는 비상 전국대의원회의에서 향후 계획을 확정하고 9일 발표할 예정으로 백지화를 위해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으로 잠재돼 있던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면서 피로도만 높아지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