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기 (79)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최근 '중국 경도론'에 이어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미국과 중국이 일촉즉발 상태인 가운데 아슬아슬 외줄타기 행태를 보이는 한국 정부에 대해 이제는 '우리의 길'을 제대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마디로 이제 더 이상 줄 서는데만 정성을 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중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는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길, 그 복잡하고도 미묘한 길의 방향을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중친선협회 사무실에서 들었다.
평생 통일과 중국 문제를 천착해 온 이 회장의 집무실에는 장쩌민(江泽民)·후진타오(胡锦涛)·시진핑(习近平) 등 중국 전·현직 최고 지도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인터뷰는 이 회장이 평소 즐기는 기 중국 푸얼(보이차)차로 시작했다.
학생 때 모시던 지도 교수가 김상협(전 고려대 총장) 선생이다. 중국정치 전공자인데 그 선생의 영향이 컸다. 학생때 부터 중국강의를 들었고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다 30여 년 전에 일본 도쿄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중국 관련 자료가 별로 없었는데 도쿄대에는 관련 자료가 풍부했다. 도쿄대학에서 중국을 좀 더 공부하며 중국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후 체육부 장관을 하면서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등을 준비했는데 중국과 구소련의 참가를 위해 접촉하면서 자연히 중국을 자주 오가고 그러면서 점차 알게됐다..
▲ 얼마 전 6.25 전쟁 원인에 대한 책을 내셨다. 일본에서 연구하던 내용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 한국정쟁의 원인이 '스탈린 계략'이라는 내용의 책이다. 30여 년 전, 일본에서의 공부 연장선상이다. 1980년대 당시 박사학위 논문을 '중소대립 맥락에서 본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해 썼다. 이 책은 그 논문을 기초로 이후 중국에서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을 덧대는 형식으로 작업했다.
▲ 사무실에 전·현직 중국 지도자들과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후보시절 함께 중국을 방문해 내가 직접 장쩌민 전 주석을 소개시켰다. 그 때의 사진이다. 후진타오 전 주석과는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7~8차례 만나며 관계를 맺었다. 리펑(李鵬)전 총리·주룽지(朱镕基) 전 총리·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웨이젠싱(尉健行)· 리란칭(李嵐淸)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과도 만나 한·중 간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현직 중 최근 북한 열병식에 간 류윈산(劉雲山) ·위정성(俞正声)·장가오리(张高丽) 등 정치국 상무위원과 리잔수(栗戰書) 당 중앙 판공청 주임, 왕자루이(王家瑞) 당중앙 대외연락부장, 장다밍(姜大明) 국토건설부장, 차이우(蔡武) 전 문화부장 등과도 교분이 깊다.
▲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각별하다고 알고 있다.
2005년 4월 저장성 닝보(宁波)에서 열린 소비품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시 주석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그해 7월 서울을 방문한 시 주석에게 제주도 서귀포의 ‘서복공원’을 소개했다. 특히 닝보가 서복이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기 위해 떠난 출항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주석은 이 공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 이번에 방한하는 리커창 총리와는 어떤가.
리커창 총리는 나를 만날 때 마다 “이번 만남이 몇 번째다”라고 인사를 하곤 한다. 이번(한중일 정상회의 계기)에 만나게 되면 “이번 만남이 5번째다”라며 선수를 치겠다.(웃음)
▲ 중국인들과 인맥을 잘 유지하는 것만큼 중국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중국, 어떤 나라인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 말이 있다. 중국을 한두 번 여행하면 책을 한 권 쓴다. 그런데 열 번, 스무 번 중국을 알면 알수록 한 마디도 하기가 어렵다. 이렇듯 중국이 어떠냐고 하면 할 말이 생각 안 난다. 중국은 너무너무 큰 나라다. 한두 마디로 하기엔 역사도 오래됐고 땅도 넓고 문화도 너무 다양하다. 다만 우리하고 딱 비교되는 게 한 가지 있다. 우린 ‘불의(不義)’를 못 참는다. ‘정의롭지 못한 것’, 중국 사람들은 불의를 잘 참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한국에서 나오느냐는 거냐며 의아해한다. ‘어떻게 자기 목숨을 던지느냐’ 며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중국인들은 ‘불리(不利)’를 못 참는다. 돈 몇 푼 손해 보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한국과 중국을 단순 비교하면 이렇지 않을까.
▲ 중국인에 대한 이런 평가, 중국인이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방금 한 말을 다시 풀면 중국인들의 DNA에는 무서운 ‘상인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면서 국내 인사들이 시장경제를 중국에 가르치려고 하는데 이것은 우스운 노릇이다. 중국인들은 수천 년간 상인정신을 지녀왔다. 난 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쉽게 당할 수밖에 없는 중국, 중국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한국 사람은 마음속의 이야기를 한 가지로 한다. 두 세 가지를 겹겹이 숨겨놓고 이야기 하지 못한다. 일본인은 두 가지를 말한다.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명분상의 마음) 두 가지 표현이 그것이다. 중국인은 그 마음을 말하는 방식이 수십 가지다. 그 속을 어떻게 알 수있겠나.
▲ 중국과의 관계증진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의 첫 만남에서 언급한 서복공원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은데.
서복공원은 국회 문화관광원장을 할 당시 만들었다. 서귀포는 제주도의 남쪽인데도 왜 서귀포인지 궁금했는데 그 지명은 '서복이 서쪽, 즉 중국으로 돌아간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하더라. 그것이 2200년전 일이다. 처음에는 설화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역사적인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서복공원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특히 중국 지도부에 있는 사람들이 서복공원을 다녀가면 꼭 승진했다. 제일 먼저 다녀간 사람이 중국의 차이우(蔡武)전 중국 문화부 부장(장관)인데 이 사람이 서복공원을 다녀 갈 때는 중국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이었다. 그런데 다녀간 뒤 장관으로 승진하더라. 두 번째는 서복공원을 다녀간 사람은 시진핑 주석이다. 시 주석이 절강성 서기인 당시 서울을 방문할 때 환영만찬을 한 적이 있다. 제주도를 방문한다는 시 주석에 서복공원을 추천해줬더니 ‘서복공원은 중국에 있는 공원 아니냐’하더라. 그래서 제주에 내가 만들어 놨다며 방문을 권유했고 그렇게 시 주석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이 서열 5위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서열 한 2~3번째가 된다. 막강한 사람이다. 그 사람도 서복공원 다녀가서 지금 중앙 상무위원이 됐다. 류 위원은 선전 부장당시 다녀갔다. 장가오리(张高丽)경제담당 부총리도 산둥성 서기로 재직 서복공원을 다녀갔다. 그 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서복공원을 다녀가기만 하면 예외 없이 승진하더라. 서복. 복 받는 공원이 아닌가. (웃음)
▲ 한중 양국관계가 정냉경열(政冷經熱)에서 정열경열(政熱經熱)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수교 직후에 후진타오 전 주석을 만났는데 북한을 의식해서 인지 정치적 내용에 대한 대화를 아예 안 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부주석 되기 전 만났을 때 경제협력을 잘하려면 정치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정당교류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후진타오 전 주석에 제의했다. 물론 정당교류가 시작 된 이후에도 경제만 뜨겁고 정치는 협력을 잘 안하려는 차가운 관계가 지속됐다. 중국이라는 큰 배가 움직이다보면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수 없으니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던 중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이 정말 우리와 가까운 나라구나, 참 고맙다’라고 처음으로 한국에 제대로 된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정열경열’하는 단계에 온 게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의 중국행은 한중관계가 ‘정열경열’로 가는 획기적 사건이다. 다만 미국이 갖는 의구심이 우리로선 부담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달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그런 우려를 많이 해소했다.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 등 앞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한미 동맹은 지켜 나가되 한중관계를 어떻게 병립시켜 나가느냐는 한국외교가 당면한 과제다.
▲현재의 미중 관계를 평가하자면.
미중 관계는 과거의 미소 관계와는 다르다. 미국과 소련은 이데올로기-군사안보 대결로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련이 망했다. 반면 미·중 관계는 경제협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 미·중은 채권국과 채무국, 생산국과 소비국의 관계이다. 둘 중에 하나가 망하면 같이 망한다는 얘기다. 미·중은 경쟁은 하지만 ‘판은 깨지 말자’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이런 점을 우리가 바로 알고 ‘미국이 (우리에) 눈 흘기면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과 열등감에 서둘러 가서 줄 서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갈 길이 과연 어디인지 지혜롭게 개척해 가면 되지 않겠나".
◆이세기 회장은...
1936년 경기도 개풍군(현 황해북도 개성시)에서 태어난 이세기 한중 친선협회장은 4선(11, 12, 14, 15대) 의원과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중국통(通)이다.
1985년 남북 막후대화 창구를 개설했으며 한·중 수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1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덩샤오핑(邓绍平) 지도노선을 연구, 정계 은퇴 후에는 한중 친선협회장을 맡아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1956년 고려대 졸업 △1961년 고려대 정치학 박사 △1965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 수료 △1979년 고려대 교수 △1981년 국회 올림픽 특별위원회 위원장 △1985년 국토통일원 장관 △1986년 체육부 장관 △1993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1996년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위원장 △2002년~한·중친선협회 회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대담 박원식=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강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