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벵거 감독, 10년 만에 EPL 우승컵 들 수 있을까?

2015-10-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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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아스널 페이스북]

아주경제 서동욱 기자 = “나의 꿈은 수많은 타이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그라운드 위에서 단 5분이라도 지속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1996년부터 아스널을 이끌어온 감독 아르센 벵거(66)의 대표적인 말이다. ‘패스 앤 무브’로 불리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플레이를 추구하는 벵거의 스타일은 ‘벵거볼’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2004년 무패 우승의 업적을 세운 후 이어진 10동안 EPL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2006년 홈구장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옮기면서 총 4억 파운드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됐고, 이 때 끌어안은 부채를 해소하는 동시에 팀을 운영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10년 동안 벵거는 수많은 비난을 들어야했다. 아스널이 ‘이기는 경기’가 아닌 ‘아름다움 경기’만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과는 다르다. 벵거는 꾸준히 이겨왔다.

아스널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 받은 2005/2005~2014/2015년까지 벵거가 실제로 사용한 넷스팬딩(선수 이적시 수입과 지출액을 합한 비용)은 300억원에 불과했다. 라이벌 감독 무링뇨가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를 거치면서 사용한 5200억, 반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014/2015 한 시즌에 사용한 3000억과 비교하면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EPL역사상 구장을 신축하고 강등당하지 않은 팀은 아스널이 최초다. 여기에 벵거는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고, 이 기간 조별 리그도 모두 통과했다. 팀의 사정에 맞는,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둬온 것이다.

그 와중에 선수까지 길러냈다. 2004/2005 시즌 무패 우승 멤버들을 이적시키며 미래를 준비한 벵거는 어린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다. 2008/2009시즌에는 팀이 제법 재건되 ‘환상의 4중주’로 불리던 흘렙, 로시츠키, 파브레가스, 플라미니 네명이 미드필더진에서 유기적인 패스플레이를 펼쳤다. 공격수 에두아르도의 부상과 후반기 체력 저하로 안타깝게 3위에 그쳤지만 이 시즌 아스널과 벵거가 바라는 축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다. 아스널은 2004/2005 시즌 무패우승 멤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수들로 스쿼드를 구성했다. 플라미니는 전성기 질로베르트 실바의 역할을 대신하며 미드필더진에 싸움닭 역할을 해냈고 파브레가스는 경기를 조율하고 공격의 시발점이 되며 비에이라의 역할을 해냈다. 흘랩은 환상적인 드리블로 융베리가 하던 돌격대장 역할을 로시츠키는 측면에서 피레스처럼 빌드업과 공격 전개를 도왔다. 이 구성은 로시츠키와 파브레가스의 잦은 부상과 흘랩, 플라미니의 이적으로 와해됐지만 큰 인상을 남겼다.

이후 팀의 주축이었던 파브레가스와 반페르시의 이적은 벵거에게 큰 충격을 줬다. 때문에 이때부터 벵거는 ‘브리티쉬 코어’라는 정책을 사용했다. 팀의 중추를 충성심 높은 영국 출신 선수들로 키워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선수들이 웨일즈의 램지, 잉글랜드의 깁스, 월셔, 월콧, 체임버스 등이었다. 비록 성장이 더딘 선수들이 있지만 벵거의 선택은 정확했다. EPL은 선수단에 잉글랜드 선수들을 일정 비율 포함시켜야 하는 ‘홈그로운 정책’을 강화하며 다른 구단들을 당황시켰다. 하지만 유수의 잉글랜드 유망주들을 보유하고 있는 아스널은 여유있게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사진출처=아스널 페이스북]

2010년 이후 아스널에 또 다시 위기가 왔다. 주포 반페르시가 이적하고 월셔 등이 부상에 시달리며 선수 수가 급격히 부족해 진 것이다. 벵거는 아르테다, 지루, 메르테사커, 카솔라등을 영입하며 팀을 추슬렀지만 사실 벵거가 바라는 축구는 불가능했다. 벵거는 즐겨쓰던 4-4-2에서 4-2-3-1로 전형을 바꿔야했다. 3선에 램지와 아르테타를 놓고 2선을 카솔라 월콧등으로 구성, 전방에 강인한 원톱 지루를 지원케 했다. 이는 속공 상황에서 ‘패스 앤 무비’를 펼치는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른 ‘지공’ 위주의 전술이었다. 지루의 느린 속도는 역습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고, 카솔라의 볼을 끄는 플레이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의 암흑기가 끝나갈 무렵 재정을 회복한 아스널은 ‘원마켓 원클래스’정책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013/2014 시즌 외질(655억원), 2014/2015 산체스(605억원), 2015/2016 체흐(192억원)를 영입하며 스쿼드의 질을 급격히 높였다. 더불어 코클랭의 성장과 카솔라의 중앙 미드필더 변신은 3선에 대한 벵거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부상에서 회복한 월콧이 원톱의 자리에서 앙리와 같이 속도와 결정력을 책임져 주고, 외질이 2선에서 과거 베르캄프와 같이 공을 소유하며 창의성을 부여한다. 양쪽 측면에서는 왼쪽에 산체스 오른쪽에 램지가 공격을 주도하는데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운 램지는 과거 피레스, 돌파형의 산체스는 융베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벵거가 즐겨 쓰는 측면 공격수 조합이다. 3선은 골을 탈취하고 빠르게 패스를 뿌리는 코클랭과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플레이메이킹을 시도하는 카솔라의 조합이 위력을 발휘한다. 이는 과거 실바와 비에이라의 조합과 유사하다. 벵거는 전형적으로 발이 빠르고 빌드업에 능한 센터백과 수비가 강한 윙백 한명, 공격에 강점이 있는 윙백 한명으로 수비진을 구성해왔다. 이런 면에서 지난 시즌 영입된 가블리엘과 기존의 코시엘리의 센터백 조합은 이상적이다. 올 시즌 가브리엘은 출전한 7경기에서 퇴장당한 첼시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수비력이 강한 레프트백 몬레알과 빠르고 공격적인 벨레린의 조합도 적절하다. 벵거가 바라는 스쿼드가 갖춰진 것이다.

일부 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점은 아스널이 공을 소유하며 지공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전성기로 알려진 2003~2005년까지만 해도 아스널의 골 장면은 대부분 역습 상황에서 나왔다. 앙리와 베르캄프를 비롯한 양쪽 측면 공격수들은 빠른 패스 플레이로 골을 만들어냈다. 팬들은 이를 ‘두두다다’라고 표현하며 지공 상황에서의 펼쳐지는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와 차별화했다. 올 시즌 그 ‘두두다다’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과 스쿼드가 구축됐다. 최근 맨유전와 뮌헨전의 승리는 그 단적인 예다. 아스널은 경기 내내 수비벽을 두텁게 쌓다가 공을 탈취한 후 빠른 속도의 외질, 월콧, 산체스, 램지가 전방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침투하고 서로 빠르고 유기적인 패스웍을 통해 찬스를 만들어 내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줬다. 이는 지난 시즌 맨시티 전 승리에서도 보여준 패턴이다. 이와 같은 전술과 그에 걸맞은 선수 구성은 아스널이 점유율에서 뒤져도 슈팅 숫자에서는 뒤처지지 않는 공격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벵거의 축구는 변한 게 아니라 이제야 자기 자리를 찾은 것이다.

[사진출처=아스널 페이스북]

물론 벵거가 바라는 속도감 있는 패스플레이에도 단점이 있다. 뒤로 눌러 앉은 수비적인 팀에게는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패스플레이를 펼칠 공간이 부족하고 외질, 산체스, 월콧은 모두 수비라인을 밀어낼만한 피지컬을 갖추지 못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아스널은 지난 첼시전이나 챔피언스리그 디나모 자그레브전과 같이 선수비후역습을 노리는 팀들에게 고전하며 패한바 있다. 이런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벵거는 후반 지루를 조커로 활용하고 있지만 상대의 촘촘한 수비를 뚫기 위한 부분전술도 필요해 보인다.

아스널은 리그에서 승점 19점으로 1위 맨시티에 2점 뒤진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아스널은 첼시나 맨유 같은 수비가 강한 강팀에 덜미를 잡히며 우승 경쟁에서 뒤쳐진바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오히려 전진하는 강팀에게 승리할 수 있는 구성이 갖춰졌다. 드디어 자신의 축구를 완성해가는 벵거가 10년 만에 EPL 우승컵을 들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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