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조가연 기자 =습기가 가득 찬 듯 흐릿한 모습의 여성들이 캔버스에 담겨있다. 짙은 회색과 청록, 검붉은 색의 각기 다른 그림들은 모두 하나의 장소, '목욕탕'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K에서 진행 중인 '배스하우스(Bathhouse)'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캐롤라인 워커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작가는 서양 미술이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해 여성과 관음성(觀淫性)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그려왔다.
16세기 터키 스타일의 욕탕부터 현대식 스파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목욕탕의 형태는 바뀌지만 증기가 가득 찬 공간에서 느껴지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감각'은 고스란히 이어진다.
'세신(洗身)'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을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대중이 사용하는 공공시설이라는 '목욕탕의 역설'은 보는 이를 매료시키에 충분하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빈 공간에 시선을 던지거나 때론 캔버스 밖의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감추기와 은폐, 감시와 관음성을 다뤄온 워커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구조다.
이번 전시에선 특히 여성과 관음성에 대한 관심이 한층 돋보인다.
작가는 작품에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이나 인어, 물의 요정 등 신화 속 존재를 등장시키며 물이 가진 '생명', '어머니', '여성'으로서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가상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을 무대로 삼아 작업해왔다는 작가는 그림 속 공간에 대한 정보는 드러내지 않았다.
덕분에 작품마다 미묘한 비현실성과 환상성이 적절히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