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힙합 프로듀서의 '전성시대'

2015-09-2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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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메바컬쳐 제공]

아주경제 서동욱 기자 = 바야흐로 힙합 프로듀서들의 시대다.

한때 랩퍼들을 위해 배경 음악을 만들어주는 역할로 홀대받던 비트 메이커와 작곡가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힙합 음악에서 프로듀서는 일종의 작가이자 연출가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스토리와 배경에 랩퍼들이 랩이라는 연기를 입히는 셈이다. 힙합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젠 대중들은 랩퍼 뿐만 아니라 곡을 만들고 구성한 프로듀서들을 보고 음악을 고르는 때가 됐다.

프로듀서 중심 음반의 선구자라고 평가되는 이는 프라이머리다. 그가 2006년 만든 프로젝트 밴드 형식의 그룹 프라이머리 스쿨(Primary Skool)은 멤버들이 곡을 쓰고 외부 랩퍼들의 피처링(featuring)을 더해 곡을 완성했다. 1집 ‘스탭 언더 더 메트로(Step Under The Metro)’에는 가리온, 피타입, 다이나믹 듀오 등 당대 최고 랩퍼들이 참여해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프라이머리 스쿨에서 부분 독립한 프라이머리 스코어(Primary Score)와 프로젝트 그룹 프라이머리&마일드 비츠(Primary&Mild Beats)는 모두 평단과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의 호평을 받으며 프로듀서 음악계에 새 장을 열었다. 특히 프라이머리 스쿨이 피스쿨(P'Skool)로 이름을 바꾼 후 발표한 마지막 앨범은 빈지노라는 재능을 발굴한 성과만으로도 지금도 많은 힙합 팬들에게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프로듀서들은 그룹으로 나오거나 유명 랩퍼와 함께 힘을 합쳐 음반을 냈기 때문에 그들 자체가 주목 받지는 못했다. 참여한 랩퍼들의 이름값이나 곡 자체에만 이목이 쏠렸다. 한 예로 1세대 힙합 프로듀서 랍티미스트가 2007년 내놓은 낸 1집 ‘22 채널(Channels)’은 힙합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 명반으로 인정받지만 당시 스포트라이트는 타이틀 곡 ‘더 트라이엄프(The Triumph)'에서 괴물 같은 실력을 뽐내며 등장한 신인 랩퍼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c)의 차지였다.

또 랍티미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프로듀서 뉴올도 자신의 앨범을 내긴 했지만 그보다 레게 랩퍼 쿤타와 함께한 쿤타 앤 뉴올리언스, 마이노스와 함께한 마이노스 앤 뉴올과 같은 프로젝트 그룹으로 더 알려졌다. 대부분 무대에도 오르지 않고, 또 랩도 하지 않는 프로듀서들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프로듀서 음악에 새로운 계기를 가져 온건 다시 프라이머리였다. 피스쿨에서 독립한 후 2011년부터 슈프림팀, 가리온, 리쌍 등과 작업을 하며 주목할 만한 싱글 앨범들을 내 놓던 그는 2012년 정규 1집 앨범 ‘프라이머리 앤드 더메신저 LP(Primary And The Messengers LP)’를 선보였다. 프라이머리의 이 앨범은 소위 ‘대박’이 났고, 그는 괴상한 모양의 박스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 직접 올라 디제잉을 하며 대중 음악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프라이머리는 앨범 당 한명의 전담 래퍼(빈지노)를 뒀던 피스쿨 시절과는 달리 본인의 이름으로 내놓은 앨범에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곡들에 그에 맞는 랩퍼들을 초청하는 방식을 썼다. 이는 곡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랩퍼에게 집중되던 대중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효과를 줬다. 이후 프라이머리는 MBC ‘무한도전’ 등에 출연하며 스타 프로듀서가 됐다.

프라이머리는 비록 ‘무한도전’ 표절 논란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지만 프로듀서들의 영향력은 더 막강해졌다. 최근에는 각 레이블별로 한 명의 유능한 프로듀서가 없으면 그 레이블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심지어 레이블을 대표하는 프로듀서가 그 소속 랩퍼들의 앨범과 랩 스타일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각 레이블에는 적어도 한 명의 유명 프로듀서들이 포진해 소속 랩퍼와 가수들의 음악을 대부분 만들어 낸다. 다이나믹 듀오의 ‘아메바컬쳐’에는 아직 프라이머리가 건재하며 소속 가수들의 음악에는 그의 향기가 묻어 난다. 스윙스가 설립한 ‘저스트 뮤직’에서는 천재노창이라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비트메이커가 등장해 이전 힙합계에서는 본적 없는 창의적인 비트와 멜로디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진출처=그레이 인스타그램]

스윙스의 ‘듣고 있어’와 자이언티의 ‘뻔한 멜로디’ 등을 작곡하며 유명해진 그레이는 AOMG에 가세해 박재범, 사이먼 도미닉 등의 히트곡을 만들고 있다. 랩퍼 양성소라고 불리던 ‘소울컴퍼니’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다 도끼, 빈지노와 함께 일리네어를 설립한 더 콰이엇은 이미 랩퍼보다는 프로듀서의 역량으로 더 인정받는다. 라임버스 등의 그룹으로 활동하며 빈지노의 '달리 반 피카소(Dali, Van, Picasso)'를 작곡하고 미니앨범 ‘하우 두 아이 룩(How do I look)'을 프로듀싱한 피제이(PeeJay)도 최근 자신의 1집 앨범을 히트 시키며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렇듯 랩퍼들의 뒤에서 곡만 만들고 비트를 찍던 프로듀서들이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을 내놓고 하나의 브랜드화하고 있다. 프로듀서의 음반을 들으면 다양한 랩퍼와 가수들이 참여해 지루함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앨범 수록곡들이 유기적으로 배열돼  앨범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또 검증되지 않은 여러 작곡가가 참여한 단일 가수나 랩퍼의 음반보다 앨범 전체의 완성도도 기대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해 대중의 음악 선택 방식도 달라진 지금 프로듀서들의 음악적 행보와 그들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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