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조가연 기자 = 흰 공간 군데군데 색이 들어앉았다. 파랑에 빨강을 더하고 검정과 노랑이 만났다. 단체관람을 온 아이들의 재잘거림만큼이나 다채롭고 강렬한 색의 향연이다.
"세상을 다 채우고 있는 게 '색'이잖아요, 그 '색'을 갖고 전시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색은 본질적으로 물체에 햇빛이 닿아 반사된 특정한 파장이 우리 눈의 망막에서 색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고로 색은 곧 빛이고 빛은 다시 색이다.
하지만 색에 대한 사람의 판단은 절대적이지 않다. 같은 색이라도 사람마다 뇌를 통한 주관적 감각에 의해 다르게 인지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떠올리는 초록과 내가 생각하는 초록이 서로 다른 이유다.
색은 예술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예술가들에게 색은 오브제만큼이나 각자의 예술적 정체성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강재현 큐레이터도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예술가들은 색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색을 선택하고 사용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컬러 스터디(COLOR STUDY)'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색이 아니라 사회적, 과학적 맥락에서의 색을 작가 나름의 개성을 통해 분석한 전시다.
문형민, 박미나, 양주혜, 정승, 조소희, 진달래&박우혁, 하이브, 베르나르 포콩, 샌드 스코글런드, 닐 하비슨이 참여해 회화와 사진, 빛과 소리를 더한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몇몇 작품들은 예술이라기보다 연구에 가까웠다. 사비나미술관의 기획전시 도록 21권을 분석해 17만1729개의 단어 중 상위 10개를 색으로 표현한 문형민 작가의 작품 'by numbers series: 사비나미술관 2005-2015'가 그렇다.
전시관 2층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보편적인 진리나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도나 관습, 통념 등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고 객관적 시선을 통해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문 작가는 “단순히 통계 결과를 보여주기보다 시각적 요소에 관심을 먼저 두도록 색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박미나 작가는 국내 색연필 회사 두 곳의 12색 색연필 세트에 대한 사용보고서인 '12 Colors Drawings III, IV'를 선보였다.
색연필 회사가 제시한 순서대로 전시돼 관람객이 배치순서와 색감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게 했다.
여행을 다니며 수집했다는 헬로키티, 토이 스토리 등의 색칠책을 별은 남기고 빼곡히 채운 모습이 발랄하기도 하다.
작가는 시중에 유통되는 물감과 색연필 등을 회사별로 모은 뒤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색채의 지형도를 파악하려는 지속적인 시도'라고 설명한다.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이는 전색맹 장애로 태어난 닐 하비슨은 색을 소리로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장치 '아이보그(Eyeborg)'를 이용한 작품을 내놓았다.
배경과 모든 소품을 직접 만들어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진 작가 샌드 스코글런드는 '금붕어의 복수'와 '웨딩'을 선보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색에서 탈피한 낯선 색감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에 대한 11인의 독창적 해석이 돋보이는 이번 전시는 내달 23일까지 이어진다. 02-736-4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