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덫에 걸린 정부…성장·재정균형 사이서 '갈팡질팡'

2015-09-09 07:56
  • 글자크기 설정

대부분 7월 추경에 반영…보수적 접근 불가피

3% 증액도 고육책…300여개 정책 통폐합해야

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정부가 성장과 재정 균형을 놓고 방황하고 있다. 명확한 길을 제시하지 못한 채 중립적 선택을 했다. 내년 예산안은 정부의 고민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라곳간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데 무작정 확장정책을 펴기에는 무리수가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그렇다고 저성장 장기화에 접어든 한국경제를 넋 놓고 바라볼 수는 없다.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제 침체 등 대외변수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경기부양 정책을 손 놓을 경우 작은 변수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후 줄곧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내년 예산을 보수적으로 편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이번 예산편성안에서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이 성장과 균형재정”이라며 “경기 활성화를 위해 빚을 좀 내더라도 확장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재정건전성에 포커스를 맞춰서 할 것인가.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라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재정건전성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를 고민한 그런 예산”이라고 덧붙였다

◆7월 추경이 예산안의 중심을 무너뜨리다

내년 예산안이 보수적으로 잡힌 가장 큰 이유로 8월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 16차례 추경에서 한 번도 하반기에 집행하지 않았는데 올해 추경은 7월에 잡혔다.

일지감치 예산안의 기본 틀을 만들어 놓은 기획재정부는 추경이 편성되자 원점에서 다시 예산을 짜는 이중고를 겪었다. 내년 예산이 3% 정도로 역대급의 소폭 증액의 원인인 셈이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금 정부안에 SOC가 23조3000억원 정도 되는데 추경에 SOC가 1조3000억원이 배정돼 실질적으로 24조6000억원 정도가 된다”며 “대부분 경제활성화 예산이 추경에 반영돼 본예산 증액이 소폭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입장대로라며 결국 추경이 내년 예산을 끌어다 쓴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내년 예산은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기재부 예산실은 7월 추경부터 약 한달 반 동안 거시경제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려야했다.

결국 7월 추경으로 인해 내년 경제성장률은 3.5%에서 0.2%p 낮춘 3.3%로 잡았고 경제활성화보다 일자리와 문화, 국방 등에 집중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악화되는 재정건전성…3%도 증액도 버겁다

내년 예산안은 정부가 더 이상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국가부채 비율이 마지노선에 임박한 것이다.

세수 결손을 막고 경제지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경상성장률을 4.2%로 잡으면서 총수입 증가율은 2.4%에 그쳤다. 그만큼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경제 버팀목이던 수출은 지난달 6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하면서 하반기 경제성장률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중국발 세계 금융 불안이 야기되는 등 세계 경제 회복세가 주춤거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재원을 끌어 모을 여유자금이 부족하다. 재원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냥 늘릴 수 없어서 총지출 증가율을 3.0% 수준까지만 올렸다. 2010년(2.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총지출 증가율 3%도 고육책이다. 3%를 올리기 위해 내년 예산안에서 300여개 정책을 통폐합하고 보조사업 수도 10% 줄인다. 바짝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지다.

이렇게 줄여도 재정건전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재정수지 적자폭은 올해 예산에서 GDP 대비 2.1%였는데 내년에는 2.3%로 악화가 예상된다. 국가채무 비율 역시 38.5%에서 40.1%로 높아진다.

방문규 기재부 2차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국가채무 비율이 평균 41%포인트 늘어나며 경기를 지탱하고 있다”며 “세계 경기변화에 대응하려면 우리나라도 재정 확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조개혁이 해법…성장잠재력 확충 필요

전문가들은 내년 예산 성패는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성장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반응이다. 재정 투입에 따른 단기성과만 거두고 재정건전성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굉장히 딜레마를 갖고 설계한 예산안으로 보인다”며 “중국 등 세계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이 팽창적으로 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지출을 늘려 성장률을 올릴 시점이 아니라 성장 활력을 높이는 부분에 지출을 집중하고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여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장잠재력을 시급히 끌어올리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은 계속 악화될 것이라는 부분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잠재성장률을 올려야 재정건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인구구조까지 고려할 때 재정건전성이 매우 위험한 단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