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열린 열병식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됐다. 중국인민이 일어섰다(中華人民共和國成立了.中國人民站起來了.)"는 선언을 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당시 보병부대 기갑부대 기병부대 등 1만6400명이 열병식에 참가했다. 전투기 17대 중 4대에 실탄을 장착해서 비행했다.
1950년 열린 2차열병식에서는 주더(朱德) 중국군 총사령관이 전투준비명령을 선포했다. 열병식에는 무려 2만5000명의 군인이 동원됐다. 그리고 중국은 열병식 20여일 후에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1953년 5차 열병식에서 주더 총사령관은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를 선언했다. 중국에서는 6.25전쟁 가운데 중국참전 이후의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한다. 그 이듬해인 1954년 열병식에서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참석했다. 당시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하는 사진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열병식 참석과 함께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뒤 대약진 운동(1958∼1960년)과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광풍 속에서 열병식은 중단됐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집권했다. 건국 35주년을 맞은 1984년 덩샤오핑은 25년만에 12차 열병식을 진행했다. 당시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샤오핑닌하오(小平您好)'라는 플래카드를 높이 들고 덩샤오핑을 환호했다. 12차 열병식에 선보인 무기와 장비는 모두 중국산이었다.
13차 열병식은 건국50주년을 기념해 1999년 개최됐다.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중국산 차량인 훙치(紅旗)를 타고 육해공군을 사열했다. 10년후인 2009년 건국60주년을 기념한 14차 열병식이 진행했다. 200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 중화부흥의 기치를 내건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이 사열했다. 당시 선보인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둥펑(東風) 시리즈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해 열병식은 처음으로 국경절이 아닌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에 개최된다는 점에서 역대 열병식과 차별화된다. 중국은 과거 관계가 밀접했던 국가의 외빈들을 열병식에 초대했으나 이번처럼 51개국에 초대장을 보내 49개국의 국가원수와 정부 대표 등이 참석하는 ‘국제 행사’로 치르기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