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남북이 10시간에 가까운 밤샘 마라톤 협상에서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정회한 뒤 23일 오후 3시 30분부터 추가 협상을 재개하면서 무슨 내용으로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새벽 남북 고위급 접촉 정회 후 “최근 조성된 사태의 해결 방안과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면서 최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해법은 물론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청와대가 밝힌 '최근 조성된 사태의 해결 방안'이라 함은 당연히 북한의 지뢰 도발과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또 이에 반발한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과 준전시상태 선언 및 최후통첩 등 긴장 고조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 측은 고위급 접촉에서 이번 긴장 고조가 지난 4일 북한군에 의한 비무장지대(DMZ)내 지뢰도발에서 비롯된 만큼 북측의 지뢰 도발과 포격 도발에 대한 시인과 사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측은 이미 남북 고위급접촉 이전부터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발생한 지뢰도발과 20일 DMZ 일대에서의 포격 도발에 대해 "남측의 조작극"이라며 자신들의 소행을 전면 부인해왔다.
이에 따라 이번 접촉에서도 북측은 자신들의 소행을 부인한 채 최근 남북간 긴장고조의 원인이 남측의 대북 심리전 방송에 있다면서 즉각적인 중단과 확성기의 철거를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측이 체제를 심각히 위협할 수 있는 대북 심리전 방송에 대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부터 '방송 중단'의 특명을 받았을 것으로 관측하는 시각도 있다.
10시간에 가까운 협상에서도 남북이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도 최근 군사적 대치상황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팽팽한 기싸움 때문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북한의 행태로 볼 때 북측이 지뢰도발과 포격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쉽게 번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추가 협상에서도 합의문 도출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측이 최근 도발에 대해 솔직한 인정은 하지 않더라도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주체는 생략한 채 '군사분계선에서의 최근 상황'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유감 표명을 할 여지는 있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난제'인 지뢰도발에 대한 해법은 일단 미룬 뒤 북측은 전방지역에 대한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고, 우리 정부는 대북 심리전 방송을 단기적으로 중단하면서 일단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추가 고위급접촉 일정을 잡는 우회로를 택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협상 과정에서 남북이 인도주의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카드를 적절히 활용하며 합의도출의 여지를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 경축사를 통해 "연내에 남북 이산가족 명단교환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 의지를 강력하게 밝혔지만, 여지껏 북한의 의미있는 답변은 듣지 못한 상황이다.
통일부는 다음 달 중순까지 남한 이산가족 6만여명의 현황을 파악해 북측에 일괄 전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이산가족 상봉 재개 문제가 논의됐다면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까지도 함께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등을 이산가족 상봉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연계해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 18일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제안한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을 비난하며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이산가족이 자연히 만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양측은 밤샘 마라톤 협상 과정에서 서울과 평양으로부터 훈령을 받으면서 수차례 정회를 하고 때로는 수석대표끼리 일대일 접촉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이 1차 접촉을 토대로 내부 전략을 가다듬은 뒤 다시 얼굴을 맞댄 만큼 해법도출을 위한 묘안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