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 고속성장과 함께 호황을 누렸던 중국 자동차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졌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1185만300대로 전년동기에 비해 1.4% 늘었다. 증가율은 2014년(6.9%)보다 크게 둔화됐다.
이처럼 침체된 시장에서도 ‘나 홀로 독주’하는 차종이 있다. 스포츠유틸리티 차량, SUV다. SUV는 올 상반기 중국에서 모두 266만1200대 팔렸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45.94%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세단 판매량이 6% 감소한 것과 비교된다.
▲SUV로 재미 본 로컬업체
중국인들이 왜 SUV에 푹 빠졌을까? 중국인에게 자동차는 이동수단이자 신분의 상징이다.
실용적인 중국인들은 엔진 성능이나 질주 속도보다는 널찍한 좌석공간과 화려한 외관, 그리고 편안한 착석감을 자랑하는 자동차를 선호한다. SUV가 그 요구조건에 딱 들어맞는 셈이다.
이는 지프나 픽업트럭 등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인, 소형차를 선호하는 실용적인 유럽인, 저가 고연비 차량을 선호하는 꼼꼼한 일본인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SUV가 중국만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를 상징하는 차량이 된 셈이다.
하지만 수년 간 글로벌 기업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 대의 SUV 차량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글로벌 업체에서 출시한 SUV 차량 가격은 최소 15만 위안에서 최고 30만 위안을 넘었다.
이에 로컬 자동차 업체들은 15만 위안 이하의 저가 SUV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들은 SUV로 수년 간 글로벌 기업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중국 자동차 시장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내 SUV 판매량 톱 10 순위에 로컬업체 6개 차종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창청(長城)자동차가 내 놓은 SUV 주력모델 ‘하푸(하발) H6’은 상반기에 중국 시장에서 17만2000여대나 팔리며 SUV 부문 1위에 올랐다. 가격이 11만 위안(약 2000만원) 안팎으로 수입 브랜드의 절반 수준이고, BMW 출신의 디자이너를 영입한 것이 주효했다. H6는 지난 2011년 출시된 이래 28개월 연속 SUV부문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누적 판매량은 30만대를 돌파했다.
이외 장후이(江淮) 자동차 루이펑S3(9만1000대, 3위), 창안자동차 CS35(4위, 8만8000대), 창안자동차 CS75(5위, 8만6000대) 등 로컬업체가 만든 SUV가 대폭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엔 톱 10 판매량 순위에 이름을 올린 8종이 로컬브랜드였다.
사실 로컬자동차 기업들은 그 동안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밀려 지난 해 8월까지 12개월 연속 부진했다. 전체 자동차 시장 점유율도 19%까지 하락했었다. 그러다가 SUV 제품 라인업을 대폭 강화하며 지난 해 9월부터 점차 원기를 회복하고 시장 점유율 회복에 나섰다. 지난 6월말 기준 로컬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41%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로컬업체들의 전체 SUV 판매량이 141만7700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2.8% 늘었다. 중국 전체 SUV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53.3%로 외자 업체를 앞질렀다. 그야말로 SUV가 로컬업체를 먹여 살린 셈이다.
SUIV로 가장 재미를 본 로컬기업은 창청자동차와 장후이자동차다.
올 상반기 중국 자동차 시장 둔화세 속에서도 창청자동차는 371억4500만 위안의 매출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30% 늘어난 수준이다. 순익도 49억 위안으로 24% 늘었다. 창청자동차는 아예 세단 사업을 과감히 접고 모든 역량을 SUV 연구개발(R&D)에 ‘올인’했다. 상반기 창청자동차 자동차 판매량은 41만5000대로 이중 80% 이상이 SUV였다.
장후이자동차도 상반기 판매량이 30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늘었다. 특히 주력 SUV모델 루이펑S3의 경우 판매량이 11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35% 급증했다.
▲글로벌업체의 반격…현대차는 ‘고전 중’
글로벌 업체들도 뒤늦게 중국 SUV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전체 SUV 판매량 톱10 순위 중 외국합작브랜드는 겨우 상하이폴크스바겐의 투관(티구안), 둥펑닛산 치쥔(엑스트레일) 단 2종만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외자업체들이 잇달아 SUV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지난 6월엔 4종, 7월엔 5종으로 순위의 절반을 점령했다. 현재 로컬업체들이 장악한 것은 소형 SUV 시장이다. 그래서 글로벌업체들은 중대형 SUV를 타깃으로 삼았다.
현재까지 중대형 SUV 시장의 왕좌는 광저우도요타가 지난 3월 출시한 한란다(하이랜더)다. 한란다는 지난 6월 한달에만 9000대가 넘게 팔리며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상반기 도요타는 중국에서 모두 9만6000대를 판매했다. 1년 전보다 35.8% 급증한 수준이다.
한란다에 맞서 창안포드와 둥펑닛산은 각각 루이제(엣지)와 신러우란(무라노)를, 상하이GM은 앙커웨이(인비전)를 출시하며 중대형 SUV 시장 왕좌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자동차업체는 SUV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 SUV 시장의 낙오자로 현대차를 지목한다.
상반기 현대 기아차 SUV 계열 차종인 신성다(싼타페), ix35, 즈파오(스포티지R), 스파오(구형 스포티지), 투성(투싼) 등의 판매량이 대부분 40% 이상씩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상반기 현대차의 중국 현지 판매량도 약 49만8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감소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 SUV의 판매 부진에 대해 전략적 판단 착오로 다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SUV 신차출시가 지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레드오션화…출혈경쟁 심화
대체적으로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의 SUV 열풍이 오는 2018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자동차 애널리스트 쑨무쯔(孫木子)는 2018년 중국 SUV 연간 판매량이 최대 800만대에 달할 것이라며 특히 소형 SUV가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봤다.
SUV 판매량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성장세는 점차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6월 SUV 판매량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37%에 달했다. 전달 대비 2.40% 포인트 둔화된 수치다.
게다가 로컬, 합자, 외국계 브랜드가 너도나도 SUV 시장에 뛰어들며 시장 경쟁은 가열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SUV 시장에서 각 업체마다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현대차도 8월 초부터 일부 차종 가격을 10%씩 인하했다. ix35의 경우 가격은 2만 위안 낮아졌다. 기아차가 8월초부터 SUV모델 스파오의 모든 모델 가격을 일률적으로 5만 위안씩 내렸다. 이에 따라 스파오는 현재 10만~14만 대에서 판매되고 있다. 폴크스바겐, GM등 다른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속속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 동안 15만 위안 이상의 고가에 판매되던 합자 외국계 SUV 가격이 떨어지면서 그간 승승장구하던 로컬업체들도 상당한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SUV 판매량 1위 ‘H6’도 지난 6월 이미 가격을 6000위안 인하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로컬업체가 SUV 시장에서 외국계 브랜드와 경쟁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향상,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필수라고 조언한다. 앞으로도 중국 SUV 시장을 둘러싼 로컬업체와 외국업체간 치열한 진검 승부는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