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엔 인조반정이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실제로 살펴보면 월화드라마 ‘화정’서 전개된 인조반정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월화드라마 화정에선 광해군이 정명공주(이연희 분)와 홍주원(서강준 분), 화기도감 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왕에서 물러난 것으로 내용이 전개됐다.
하지만 실제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발발한 당일 여인들과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고 술에 취한 채로 반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인조반정 당일 광해군은 매우 무능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반정을 사실상 묵인해 막지 않은 왕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인조반정 당일 광해군에겐 도성을 지키고 궁궐을 호위하는 수천 명의 최정예 병사들이 있었다.
상소를 받은 즉시 광해군이 명령만 내렸으면 인조반정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이거나 죽일 수 있었다. 즉 인조반정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반정군은 1300명 정도였는데 그것도 절반 정도는 길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 모은 오합지졸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광해군이 보유하고 있고 즉시 인조반정 진압에 동원할 수 있는 병사는 수천명으로 모두 최정예 병사들이었다.
이렇게 광해군은 인조반정을 막고 연루자들을 잡아들이거나 죽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수단이 있었다.
아무튼 이런 광해군의 무능한 무대응으로 인조반정은 너무도 쉽게 성공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광해군의 측근들 중 제일 먼저 죽는 것은 김개시(김여진 분)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선 김개시에 대해 “1623년 3월 13일 상궁 김개시(金介屎)를 베었다”며 “개시가 정업원(淨業院)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가 사변이 일어난 것을 듣고 민가에 숨어 있었는데, 군인이 찾아내어 베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개시는 인조반정이 발발하고 하루 만에 반란군에 의해 죽은 것이다.
이이첨(정웅인 분)은 도망갔다 참형됐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이첨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이천의 시골집에 도망갔다가 반란군에 붙잡혀 1623년 3월 14일 참형을 받았다. 죽기 직전까지 이이첨은 인조반정 세력들에게 자신의 인맥 등을 총동원해 목숨을 구걸했고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제일 참담한 것은 인조반정 후 병자호란 등으로 인해 백성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