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월화드라마 ‘화정’ 이야기 전개로 보면 정명공주는 연인인 홍주원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강인우와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역사에서 보면 정명공주는 홍주원과 결혼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정명공주와 홍주원이 연인 사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명공주가 홍주원과 결혼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에 따라 MBC 월화드라마 ‘화정’에서도 홍주원은 사형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조선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마감을 찾지 못해 재간택 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홍영의 아들 홍주원과 결혼했다. 그런데 홍주원은 정명공주보다 3살이나 어렸다.
정명공주는 인목대비가 승하한 후 인조의 의심 등으로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다. 홍주원의 집이 워낙 큰 부자였는데다 인조와 그 후의 왕들은 자신들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인목대비와 그 딸인 정명공주를 극진히 대우하고 특혜를 주기도 했다.
인조반정의 명분이 폐모살제였으므로 정명공주가 광해군으로부터 당한 고난은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다.
이로 인해 정명공주 자체가 인조반정의 중요한 명분이었기 때문에 인조와 그 후의 왕들은 자신들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정명공주를 극진히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공주의 집은 50칸을 넘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정명공주의 살림집은 200칸이 넘었다. 역대 왕들은 정명공주에게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특혜를 줬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명공주는 결코 백성들의 원성을 듣지 않았다. 정명공주의 처신이 매우 훌륭했던 것. 명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당시 33세였던 정명공주가 강화도 갑곶나루로 건너가려 할 때 이미 공주의 재화를 실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피난 온 백성들이 몰려와 서로 배를 타려고 했다. 정명공주는 아랫사람에게 “재화들을 다 내리고 백성들을 먼저 배에 태우라!”고 명했다. 백성들은 앞다투어 배에 오르며 “과연 정명공주로다. 마음 씀씀이가 저러하니 후손들은 반드시 번창할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이런 정명공주였으므로 정명공주가 왕들의 극진한 대우와 특혜를 받고 엄청난 재산을 모았어도 백성들은 정명공주를 결코 저주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정명공주의 후손들도 엄청난 엄친아들이다. 정명공주는 7남 1녀의 자녀를 낳았다. 정명공주의 장자 홍만용(洪萬容)은 숙종 때 이조 판서와 예조 판서를 역임했다. 정조의 수호자 홍국영(洪國榮), 홍봉한(洪鳳漢)과 그의 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洪命熹)도 정명공주의 후손이다.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